[서미숙의 집수다] 10월부터 주거로 쓰면 이행강제금…'생숙 대란' 코앞
생활형숙박시설 이행강제금 부과 앞두고 전국 10만여실 소유자 '비상'
2∼3년전 집값 급등기 투자수요 몰려 공급확대…지금은 '마피'에 거래도 끊겨
정부 "생숙은 원래 주거 불가" vs 소유자 "오피스텔 전환 어려워, 구제해달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집도 아닌, 숙박시설도 아닌 이상한 상품이 있다.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건축법상으론 소유자가 직접 거주할 수 없는 숙박시설이 분명한데, 실제로는 집으로 쓰는 곳이 급증하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오는 10월 중순부터 숙박시설로 사용하지 않는 생활형 숙박시설(이하 '생숙')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달 반 뒤면 생숙을 집처럼 사용하고 있는 거주자는 적지않은 강제이행금을 받아들게 된다. 이에 따른 '생숙 대란(大亂)'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년 전 정부 규제를 피해 인기리에 팔려나간 생숙이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 2∼3년전 생숙 '인기'…사업자는 분상제 회피·투자자는 단타 차익
생활형 숙박시설의 역사는 2000년 초반에 유행한 '서비스드 레지던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외국인 등 장기 체류자를 위해 호텔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아파트처럼 취사도 가능한 신개념 상품으로, 당시 임대업을 원하는 투자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명확한 법적 분류체계 없이 등장한 '변종상품'이다 보니 문제가 됐다.
호텔식 영업이 확산하면서 2006년 호텔업계가 '불법 숙박 영업'을 이유로 서비스 레지던스 사업자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법정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결국 2012년 보건복지부는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숙박업을 취사설비 설치 금지 여부에 따라 '일반숙박업'과 '생활숙박업'으로 세분화했고, 취사가 가능한 레지던스는 생활숙박업으로 규정했다.
이후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생활형 숙박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명칭이 바뀐다.
주택 경기 침체기에 고수익 분양형 호텔로 명맥을 이어온 생숙은 2017년 공공택지인 남양주 별내지구를 시작으로 여수 웅천지구, 부산 북항 재개발 구역 등에 '주거가 가능한' 시설로 분양이 이어졌다.
특히 집값이 다락같이 올랐던 2020년과 2021년에 본격적인 '주거시설'로 홍보되며 분양 물량이 급증했다.
시행사(디벨로퍼)는 당시 아파트에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가 심사 규제 등을 피해 생숙이나 오피스텔로 눈을 돌렸다.
숙박시설인 생숙은 오피스텔보다 건축기준이 덜 까다로워 안팔리는 상업용지 등을 활용해 개발업체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좋은 타깃이 됐다.
지방자치단체는 상업용지에 건축법상 기준만 맞으면 공공택지나 재개발 구역 등 가리지 않고 생숙의 인허가를 남발했다.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만큼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2020∼2021년 2년 동안 전국적으로 분양된 생숙만 약 2만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 생숙이 청약통장 없이도 누구나 분양받을 수 있고, 당첨 즉시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억대 프리미엄이 가능하다"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수요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었다.
전입신고가 가능하고, '주거'가 가능하면서도 집은 아니어서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주택자의 경우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되고,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도 빠져 당시 세금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도 아니고 숙박업도 아닌 듯한 변칙적인 상품이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주거시설로 둔갑한 채 팔려나간 것이다.
지난 2020년 인천 송도 국제업무단지에서 분양된 생숙 '힐스테이트 송도 스테이에디션'은 608실 분양에 6만건 이상의 청약이 올리며 평균 10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듬해 서울 강서구 마곡 도시개발사업지구에서 분양된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실당 분양가가 무려 10억∼20억원대로 높은데도 876실 분양에 약 58만건이 접수돼 평균 경쟁률이 657대 1에 달하는 등 '청약 광풍'이 불었다.
건축법상과 공중위생관리법상 엄밀히 숙박시설이고, 따라서 소유자가 집처럼 직접 거주할 수 없는 데도 지자체와 정부는 누구도 제대로 관리하거나 분양을 제재하지 않았다.
사업 시행자와 건설·분양 업체들은 계약서나 분양 모집공고에 '숙박시설'로 명시해놓고선 실제론 주거가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서울의 한 생숙 분양자는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던 시기고, 주택에 대한 규제가 너무 심하다 보니 일부는 주거 목적으로, 일부는 투자 목적으로 분양을 받았다"며 "위탁업체에 맡기고 호텔로 쓰려고 분양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주장했다.
◇ 정부 '뒷북' 규제로 10만여실 이행강제금 대상…"오피스텔 전환도 어려워"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생숙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전입신고까지 해 주택처럼 사용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국토부는 2021년 초 건축법에 생숙을 주택 용도로 사용할 수 없으며, 숙박업 신고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생숙을 주거로 사용하려면 오피스텔이나 주택으로 용도변경을 하라고 했다.
정부는 생숙의 오피스텔 전환을 위해 2021년 10월 15일부터 올해 10월 14일까지 2년간 바닥난방과 발코니 등 일부 건축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주거 사용에 따른 건축법 위반으로 부과하는 이행강제금도 2년간 유보했다.
그 이행강제금 부과 시기가 올해 10월 15일부터로, 불과 한달 반밖에 남지 않았다.
이행강제금 규모는 공시가격의 10%로, 공시가격이 10억원짜리 생숙이라면 연간 이행강제금이 1억원에 달한다.
생숙을 집처럼 쓰던 소유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에 따르면 현재 건축돼 운영 중인 생숙은 전국적으로 10만3천실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지난 2년간 생숙을 오피스텔로 전환한 사례는 부산 해운대구 중동의 A호텔 등 1천200실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건축 중인 생숙을 제외하더라도 전체의 1%선에 불과한 수준이다.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내 레지던스(생숙)도 주거로 사용 중인 소유자들이 많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생숙 소유자들은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건축기준을 맞춰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반발한다.
전국레지던스연합회 김태규 전무는 "오피스텔 기준의 주차장과 통신실, 방화설비, 피난계단 거리 등을 갖추려면 아예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판"이라며 "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지구단위계획도 변경해야 하는데 이 또한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앞서 여수시는 웅천지구 내 생숙의 용도변경을 위해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추진했으나 다른 주민들의 반발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생숙 분양자들도 문제지만 생숙을 주거로 썼을 때 과밀학급 문제, 교통 유발 등에 대한 불만으로 다른 주민들이 제기하는 역민원도 만만치 않다"며 "지자체가 쉽게 나서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 생숙 소유자 "강제금 과도, 주거허용을"…전문가 "현실적 해결책 필요"
생숙 분양자들은 정부의 규제 강화로 재산권 행사에 문제가 크다고 호소한다. 주거 이용을 금지하면서 매매 거래가 전혀 안된다는 것이다.
2020∼2021년 서울 등 수도권에 인기리에 분양됐던 생숙은 한 때 억대 프리미엄이 형성됐지만, 지금은 분양가 이하에도 안팔리는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인천의 생숙을 분양받았다는 한 분양계약자는 "갑작스러운 정부 규제로 생숙을 사려는 사람이 없어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고, 전세도 놓을 수가 없게 됐다"며 "주인이 거주가 가능하다고 해서 분양을 받았으니 주거시설로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생숙 분양자들은 내달 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생숙 문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국토부는 "생숙은 과거에도 주거가 불가한 상품이었다"며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개발업체 관계자는 "학교용지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등 주택이 부담해야 할 의무는 하나도 지지 않으면서 생숙을 주거시설로 알고 분양받았으니 주택처럼 쓰게 해달라는 것은 생떼나 다름없다"며 "불법 건축물을 양성화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변종 건축물이 횡행하는 동안 명확한 법적 설명 미비, 관리 부실 등의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현실적인 구제 방안을 만들어서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과거 오피스텔이나 기숙사도 주거시설이 아니었지만, 주거로 쓰는 수요가 늘면서 양성화된 것을 사례로 든다.
이미 다 지어진 생숙에 대해 규제를 소급하는 것은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경기대 김진유 교수는 "생숙은 과거에 거주를 금지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만큼 주택에 필요한 학교 등 기반시설 비용 일부는 입주자에게 부담시키되, 이행강제금은 최소화하는 등의 구제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