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사망 배후설에 침묵하는 크렘린…사건 미궁 빠지나
전날 사건후 무반응…서방선 '푸틴 연루' 의혹 제기
미사일 요격설에도 러 당국은 '안전규칙 위반' 조사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 시도 후 두 달 만에 비행기 추락으로 숨진 데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는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와 목격자들 사이에서 비행기가 미사일에 요격됐다는 증언과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히 밝혀진 사실은 아직 없다.
그러나 크렘린궁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사건이 이대로 미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 침묵하는 러 당국…푸틴도 아무 언급 안해
2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크렘린궁과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 발생한 프리고진의 사망 사건에 대해 이날까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할 무렵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 결정적 승리를 거둔 쿠르스크 전투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참전 군인을 격려하는 연설을 했으나,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고 있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번 사건에 대한 언급 없이 서방에 대한 비난을 되풀이했다.
◇ "반란에 권위 훼손된 푸틴의 보복 가능성"
러시아 당국의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방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건의 동기와 결과 모든 것이 푸틴 대통령을 직접 가리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날 소식이 전해진 직후 "놀랍지 않다"면서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푸틴이 배후에 있지 않은 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에는 "만약 내가 그(프리고진)라면 먹는 것을 조심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이날 프랑스2TV와 인터뷰에서 전날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일반적으로 성립 가능한 진실"이라며 동의했다. 그러면서 "사고 경위를 알지 못하지만, 일부 합리적 의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프리고진이 2달 전 감행한 무장반란 시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푸틴 대통령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평가와 관련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사태 발생 직후 이를 "반역"이자 "등에 칼을 꽂은 격"이라고 비난하며 주동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혔으나,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자 하루도 안 돼 반란 중단을 조건으로 그의 처벌을 포기하면서 체면을 구겨야 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을 조건으로 제시했으나, 이후에도 프리고진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지를 수시로 활보하면서 이 같은 약속에 개의치 않는 모습까지 보였다.
게다가 프리고진이 진격 과정에서 자신들을 공격하거나 추적하던 군용기 여러 대를 격추하면서 12명의 조종사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군부 내에서 프리고진에 대한 악감정이 크게 고조됐다.
◇ "푸틴, 프리고진 사망으로 권위 되찾아"
결과적으로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사망으로 훼손된 권위를 재확립하게 됐다.
러시아 정보기관 전문가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블룸버그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대한 모든 비판을 제거하는 한편 자신이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아바스 갈리야모프는 로이터에 "푸틴에 대항할 수 없다는 가정이 확고해졌다, 푸틴은 복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말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텔레그램에서 "비행기 추락의 원인이 무엇이든 모든 사람은 이를 크렘린의 복수로 볼 것"이라며 "푸틴뿐만 아니라 군부의 관점에서도 프리고진의 죽음은 모든 (프리고진의) 잠재적 추종자에게 교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 당국이 바그너그룹을 제거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프리고진과 동료들을 제거하려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설 제기…러 당국은 안전규칙 위반 조사
사건 경위로는 미사일에 의한 격추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날 친바그너 텔레그램인 그레이존은 프리고진이 정체불명의 "러시아에 대한 반역자들"에 의해 숨졌다고 밝혔다. 그레이존은 전날 사건 직후에는 러시아군 방공망이 프리고진이 탑승한 전용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도 전문가와 목격자들을 인용해 비행기가 폭발 후 추락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익명의 소식통은 현지 매체에 비행기가 1발 이상의 지대공 미사일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P는 비행기 추락 영상을 분석한 결과 비행기가 심각한 피해를 본 후 추락했고, 이는 비행 중 폭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프리고진은 보통 비행편을 이용할 때 추적을 피하기 위해 2대의 전용기를 동시에 사용하는데, 이번의 경우 이 같은 보호 장치도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반면 러시아 당국은 격추보다는 안전규칙 위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안전규칙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독립기념일을 맞은 우크라이나가 프리고진을 암살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여러 주장이 엇갈리면서 프리고진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은 러시아 당국의 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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