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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체계 없고 기본도 상실"…철근 누락서 드러난 LH 난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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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체계 없고 기본도 상실"…철근 누락서 드러난 LH 난맥상
철근 누락, 조사 부실에 은폐까지…LH 사장 '자아비판'
2년 전에도 조직 축소·전관예우 근절 약속했지만…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박초롱 기자 = "조직이 망가지고 위계도 없고, 체계도 없고, 기본적인 것조차 상실했습니다."
1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조직에 대해 스스로 내린 진단이다.
이날 이 사장은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이 있었는데도 발표에서 빠진 LH 5개 아파트 단지를 공개했다.
LH는 철근 누락으로 비판받는 상황에서 부실시공을 확인하기 위한 전수 조사마저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번엔 발표하지 않고 숨겨 왔던 철근 누락 단지가 확인된 것이다.
이 사장은 LH 전체 임원의 사직서를 받고 본인 거취는 정부에 맡긴 채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LH는 2년 전 직원 땅 투기 사태 때도 '해체 수준의 혁신' 구호를 내놓고도 별다른 변화 없이 철근 누락 사태를 맞았다.


◇ "경미한 것까지 소상히 발표한다" 했지만…
'철근 누락' 사태로 공공주택 건설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LH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4월 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단지의 지하주차장이 붕괴하자 LH는 검단처럼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아파트 안전 점검에 나섰다.
3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무량판 적용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다음 날에는 철근 누락 단지명과 보수·보강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이 사장은 "아주 경미한 사안일지라도 LH가 발표하지 않고 나중에 (철근 누락 사실이) 알려질 경우 축소·은폐했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그래서 아주 경미한 것까지 소상히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9일 만에 LH는 전수조사 대상 자체를 누락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사실 안전점검이 이뤄져야 할 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는 91개가 아니라 102개였다.
이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감리 실태 점검을 위해 LH 단지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원 장관이 찾은 경기 화성비봉 A-3BL 단지에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으나 안전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원 장관이 "작업 현황판조차 파악 못 하는 LH의 존립 근거가 있느냐"고 질타했고, 이 사장은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으나, 이틀 뒤인 이날 철근 누락 단지가 더 있다는 게 드러났다.



LH는 언론 보도가 된 후에야 철근 누락 단지는 15곳이 아니라 20곳이라고 밝혔다. 철근 누락 기둥이 3∼4개라 누락 정도가 경미하다는 자체 판단으로 발표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이 사장은 내부 보고가 아닌 제3자 제보를 통해 누락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제가 보기에는 3∼4개가 아니라 기둥 하나에만 문제가 있어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담당 직원들끼리 모여 정리하고 발표에서 뺐다는 것은 너무 안일하고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고 말했다.
업무 수행 능력 부족 문제가 드러난 가운데 LH 퇴직 직원이 재취업한 업체들이 설계·감리 용역을 싹쓸이하는 등 '이권 나눠먹기'도 철근 누락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 LH 사장 "AS는 반드시 제가 하겠다"…조직 축소 제시
이 사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LH 혁신을 약속했다.
LH 임원 7명 전원에게는 사직서를 제출받기로 했다.
자신의 거취 문제를 고심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장은 "사즉생의 각오로 언제든지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 밝히면서도 "이 AS(애프터서비스)는 반드시 제가 수행해야 한다"며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사장이 혁신의 큰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조직의 권한과 규모 축소다.
LH의 권한이 조직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작고 강한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선 감리업체 선정 권한을 넘기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 사장은 "본사 조직을 대폭 줄이고, 지역본부의 내근 조직도 줄여 현장 실행 능력을 강화하겠다"며 "조직 진단을 통해 컴팩트한 조직으로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진단은 2021년 6월 직원 땅 투기 사태 이후에도 나왔던 것과 정확히 같다.
당시 LH는 비대해진 조직을 효율화하기 위해 기능과 인력을 과감하게 줄겠다면서 1만명 수준인 인력을 2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강력한 통제 장치 구축을 통한 전관예우 근절도 약속했었다.
2020년 9천683명이던 LH 임직원 수는 2021년 8천979명, 2022년 8천951명, 올해 8천885명으로 3년간 798명(8.2%) 줄었다. 하지만 20% 감축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LH는 주거급여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기로 했으나, 아직 이관은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직원은 600여명에 이른다.



LH 혁신의 키는 일단 정부에 거취를 맡긴 이 사장이 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자성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며 혁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 사장도 취임 9개월을 맞은 만큼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면 '유체이탈 비판'을 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는 LH 조직 진단을 위한 연구용역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LH의 '셀프 개혁'도 중요하겠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춘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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