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을 지키는 개?"…폭염 이름짓기 적절한가 '논란'
"자극적 이름에 문제 본질 가려져…대응책 수립에도 방해"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최근 매해 맹위를 떨치는 폭염에 태풍처럼 이름을 붙여주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기상 웹사이트 '아이엘메테오'(iLMeteo)는 이번 여름 유럽 전역을 덮친 극심한 폭염을 '케르베로스'와 '카론'으로 명명했다.
케르베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 셋 달린 개로, 지옥의 문을 지키는 괴물이다.
카론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뱃사공이다. 그는 죽은 자의 영혼을 스틱스강 건너 지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폭염을 이름 짓는 건 태풍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 통상적인 일은 아니다.
태풍 이름의 경우 세계기상기구(WMO) 태풍 위원회 14개 회원국이 10개씩 제출한 이름을 돌려가면서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올해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폭풍에는 '에밀리', '신디', '숀' 등 이름이 붙는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명칭을 사용하면 각국이 태풍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더 수월하기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반면 폭염의 이름과 관련한 국제 협약은 아직 없다. 일부 기관 등이 지은 이름이 널리 퍼져 사용되는 것일 뿐, 태풍처럼 공식 명칭을 붙이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제 폭염 또한 더 이상 새로운 것 없는 '뉴노멀' 현상이 됐다고 보고 이름을 붙이려 시도하고 있다. 케르베로스와 카론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폭염에 매년 공식 이름을 지어주는 건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폭염에 붙는 자극적 명칭이 문제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WMO는 전날 공개한 성명에서 "단일 폭염에 이름을 붙이면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폭염) 대응법과 위험에 처한 사람들과 같은 주목해야 할 사안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탈리아 기상학회는 BBC 인터뷰에서 "최근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폭염 명명이 이탈리아에서는 다소 선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반대 이유로는 폭염과 관련된 과학이나 분석 시스템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태풍과는 달리 폭염 예보, 경보 등 시스템은 아직 미숙한 단계에 있으며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폭염을 비롯한 극한 기온 현상에 대한 국제 표준 분류법이나 등급 체계도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염에 이름을 붙이는 건 위험 관리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폭염 대응책을 시행하는 데 오히려 혼선을 줄 수 있다고 WMO는 전했다.
이어 "폭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극한 기온 현상을 식별하거나 특징짓는 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 WMO는 당분간 폭염 이름 지정에 즉각 개입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WMO는 "121개 정부로 구성된 WMO 서비스 위원회는 작년 10월 이 문제를 검토했으며, (명명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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