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학원가 대표 단지 '대치 은마'…20년만에 숙원 푼다
내달 19일 조합설립인가 총회 개최…거래량 늘고 가격도 '껑충'
49층 설계변경 여부 수익성 좌우…재건축시 주변 전세시장에도 파장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서울 '강남 8학군', 유명 학원가를 대표하는 대치동 한복판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 바로 1979년 건설된 은마아파트다.
한때 강남 재건축의 상징이기도 했던 이 아파트가 다음 달 19일 조합설립인가 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재건축에 돌입한다. 2003년 재건축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조합설립인가를 앞두고 주민들은 들뜬 분위기고, 모처럼 매매 거래도 활기를 띠고 있다.
12일 은마아파트의 한 주민은 "추진위원회가 생기고 20년 넘도록 조합설립인가도 못받은 단지는 은마아파트가 유일하다"며 "조합설립 총회를 앞두고 20년 넘은 재건축 사업의 숙원이 풀리는 날이 임박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 20년만에 본격화하는 재건축…최고 35층→49층 설계변경 추진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에 있어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낸 단지다.
첫 관문부터 순탄치 않았다. 1998년 재건축 추진을 결의한 이후 2010년 3월에 최종 안전진단 문턱을 넘기까지 약 10년이 소요됐다.
집값과의 전쟁을 벌이던 정부는 은마 재건축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염려해 '자동문'이나 다름없었던 예비안전진단만 세 차례나 반려하는 등 장시간 재건축을 가로막았다.
재건축 정비계획안 수립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조합에서 마련한 49층 정비계획안이 서울시의 '35층 룰'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고, 설상가상으로 추진위원장이 교체되는 등 조합 내부 갈등까지 겹쳤다.
결국 서울시의 35층 기준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시 도시계획위원회 상정 5년 만인 작년 10월에 가까스로 정비계획안이 통과됐다.
은마아파트보다도 4년 뒤에 준공한 강남구 개포 주공 1단지는 은마와 같은 2003년에 추진위원회 설립 승인을 받았는데, 공사가 거의 끝나 올해 11월 말이면 입주가 시작된다.
은마아파트의 한 주민은 "40대에 이 아파트에 들어와 환갑이 됐는데 이제서야 조합설립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며 "내 돈 내고 내 집 짓는 재건축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재건축이 가시화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지난 6일 열린 회의에서 다음 달 19일 조합창립총회 개최안을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현재 정비계획상 건축계획은 4천242가구를 허물고 35층 높이의 5천778가구(임대아파트 포함) 규모로 짓는 것이다.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가 목표다.
그러나 이 안대로 건설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추진위가 조합설립 인가를 받는 대로 현재 35층을 49층으로 높이고, 건립 가구수도 늘리는 정비계획 및 구역지정 변경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정희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서울시의 층수 상향 허용이 올해부터 시행됨에 따라 작년에 49층을 고집했으면 정비계획안 통과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대치 미도아파트가 양재천 방면으로 49층 재건축을 계획 중인 만큼 은마도 대치역과 학여울역 쪽 49층으로의 설계 변경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용 84㎡ 조합원 추가분담금 최대 6억4천만원…가구수 증가가 관건
은마아파트의 현재 용적률은 204%다. 현재 정비계획상 재건축 용적률은 250%로 50%포인트도 채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중층아파트 단지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의 현재 용적률이 120∼130%대로 낮은 것과 비교해 사업성이 그리 좋진 않다는 얘기다.
현재 주택형이 전용 76.79㎡와 84.43㎡ 2개인데, 정비계획상 건립 주택형도 전용 59∼109㎡로 강남 대단지치고 크지 않다. 가장 큰 전용 109㎡의 분양면적은 142.33㎡(43평형)이며, 펜트하우스도 없다.
일반 분양가를 3.3㎡당 7천700만원으로 높게 책정했는데도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이 불가피하다.
정비계획상 전용 84.43㎡ 조합원이 같은 전용 84㎡를 신청할 경우 추가 분담금은 1천570만원에 그치지만, 전용 91㎡로 평수를 넓히면 분담금이 1억8천260만원, 109㎡ 신청 시에는 6억4천만원으로 늘어난다.
현재 전용 84㎡의 시세가 25억원 선으로, 이 가격에 아파트를 매수한다면 109㎡에 입주하는데 각종 세금이나 금융비용 등을 제외한 순수 분양 원금만 31억4천만원이 드는 셈이다.
인근 대치동 일반아파트 중 가장 비싼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114㎡ 시세는 현재 45억∼46억원 선, 나머지 소규모 단지는 이보다 낮다.
전용 76㎡ 조합원은 전용 84㎡로 가는 데만 3억1천612만원의 추가분담금이 있다. 전용 91㎡로 넓히면 4억8천270만원의 분담금이 든다.
다만 이 분담금도 조합의 정비계획 변경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최정희 추진위원장은 "49층으로 층수를 높이고 용적률도 300%대로 상향하면 일반 가구수도 늘어나 조합원들의 추가분담금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용적률 상향, 일반 가구수 증가 여부에 따라 수익성이 좌우된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부담금도 변수다.
추진위 측은 "재초환 부담금은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세금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따로 분석을 안해봤다"며 "다만 초과이익 산정 개시 시점을 추진위에서 조합설립인가 시점으로 늦추기로 한 만큼 부담금은 종전보다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조합인가 전 사자"…올해 강남구 아파트 중 거래량 2위
조합설립인가가 임박하면서 실거주자만 매수 가능한 토지거래허가구역임에도 거래는 늘고,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조합인가 이후에는 10년 보유, 5년 거주 등의 특수 요건을 갖춘 물건만 매도가 가능해 그 전에 매도·매수를 하려는 수요가 몰린 것이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 현재까지 매매된 은마아파트는 총 69건이다.
강남구 내에서 특례보금자리 대출 수요가 몰린 개포동 대치2단지(72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거래량이다.
전용 76.79㎡는 지난 2021년 11월 1건이 26억3천500만원의 최고가에 팔린 뒤 작년 말 18억∼19억원대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실거래가가 23억원까지 올라왔다.
전용 84㎡도 역시 2021년 11월 역대 최고가인 28억2천만원에 팔린 뒤 작년 말 22억원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25억6천만원으로 상승했다. 역대 최고가 대비 85∼90% 선까지 가격을 회복했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수자 입장에서 물량이 많을 때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거래가 몰렸다"며 "다만 조합설립 인가가 임박해서 앞으로는 거래가 감소하고 가격 상승세도 주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중층 재건축 사업의 바로미터"…학원가 주변 전세시장 파장도 클 듯
전문가들은 조합설립 인가 이후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추진이 본궤도에 오르겠지만 여전히 걸림돌도 있다고 본다.
일단 49층 설계변경 과정에서 용적률이나 기부채납 등을 놓고 조합원 및 서울시와 원만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재건축 부담금이나 현재 법적 시공자 지위를 갖고 있는 삼성물산·GS건설과 공사비 협상 등도 관건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C노선이 단지 하부를 관통하는 문제는 여전히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건설업계는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향후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앞으로 본격화할 중층 재건축 사업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는 "은마를 한강 변처럼 최고급 아파트로 짓긴 어렵겠지만 재건축 후에는 대치동 일대의 선도 아파트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학원 수요가 몰리는 대치동 일대 전세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은마아파트는 4천가구가 넘는 대단지이면서 저렴한 전월세를 원하는 수험생 학부모들의 선택지였다"며 "은마 재건축이 본격화하면 이 일대 아파트와 대체재인 다세대·빌라 시장은 물론, 인근 도곡·일원·수서·역삼동 일대 전세 시장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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