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물 통제에 미국 '추가 조치' 예고…반도체 전쟁 격화
미중 대결구도 속 옐런 美재무장관 6일 방중…미중관계 시험대
전문가들 "돌파구 마련보다 대화 재개에 의의…기대치 낮춰야"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반도체 원료재료인 갈륨·게르마늄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제한 방침에 미국이 강력 반발하며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5일(현지시간) 중국의 수출 제한 방침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며 "미국은 이를 해결하고 핵심 공급망에서 탄력성을 구축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 상무부는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을 다음 달부터 통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이번 방침을 두고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첨단반도체와 반도체 생산 장비 등에 대한 포괄적인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으며 조만간 후속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의 광물 수출 제한 조치가 미국의 추가 행동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중국이 광물 수출 제한으로 맞대응한 직후 이뤄지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이 양국 간 긴장 완화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중 당국 발표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6일부터 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정부 당국자들과 만난다. 옐런 장관은 방중 기간 리창 국무원 총리와 허리펑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장관) 등 중국 경제라인 핵심 인사들과 두루 회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옐런 장관의 이번 방중은 지난달 18∼19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때 양국 간 고위급 소통을 계속하기로 합의한 데 뒤이은 것이다.
옐런 장관이 미국 중앙은행장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출신으로 미국 경제의 실질적 사령탑으로 불리는 만큼 이번 중국 방문에서는 양국 간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핵심 현안들이 폭넓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 위안화 약세로 인한 환율 문제,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첨단기술 산업 공급망 재편 등 민감한 이슈들이 다뤄질 전망이다.
특히 양국이 상대를 겨냥해 내놓은 반도체 관련 규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을 제재한 데 이어 이달 3일에는 반도체와 통신·군사 장비 등에 사용되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내달부터 통제한다고 밝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드라이브에 맞불을 놓았다.
중국은 양국 당국이 옐런 장관의 방중 계획을 발표한 당일 이러한 수출 통제 조치를 공개함으로써 방중 기간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지난 5일에는 웨이젠궈 전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이 중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광물 수출 통제를 두고 "이는 중국 대응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제한이 계속 확장되면 대응조치도 더 확대될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잇따라 견제구를 던졌다.
이에 미국 상무부도 같은 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제한 조치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미국은 핵심 공급망에서 탄력성을 구축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협력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 치열한 공방을 예고했다.
옐런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부과된 대중국 고율 관세가 '미국 소비자·기업에 더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견해를 꾸준히 밝혀왔다는 점에서 유화적인 접근을 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옐런 장관이 연초 "(미중)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양국 모두에 재앙이며 나머지 국가들을 불안정하게 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전임자들보다 세계주의자(globalist) 적인 면모를 보여왔다며, 이번 방중 기간에 미국이 '디커플링'(decoupling·산업망과 공급망에서의 특정국 배제)을 의도하지 않는다고 중국 측에 이야기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옐런 장관의 이번 방문으로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면서 대중국 고율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력은 약해진 반면 중국과의 긴장 고조로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커졌다며, 관세 문제는 현행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PI)의 웬디 커틀러 부소장은 BBC에 "옐런 방중에 대한 기대는 낮춰야 한다. 그는 양국 관계를 복구하거나 중국의 수출통제·관세 해제 요청에 응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켄 로고프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대만이나 우크라이나 등 어려운 문제를 거론해야 하는 블링컨 장관에 비해 옐런 장관이 "'좋은 경찰(good cop)'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지식재산권 등 이슈에서는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옐런 장관의 이번 방중에서 양국 갈등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시진핑-리창 체제 경제라인과 소통 채널을 구축하는 데에 의의를 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재무부에서 중국 담당 수석 조정관으로 일했던 TCW그룹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로빙거는 그동안 거의 모든 수준에서 미중 정부 간 대화가 끊기다시피 했으며, 양국 핵심 경제관료들이 서로를 알지 못한다면서 "정책 입안자들이 상대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데버라 엘름스 아시아무역센터(ATC) 전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통신선을 여는 것"이라며 "한 차례 만남에서 나오는 신호가 보잘것없어 보여도 (소통 재개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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