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이던 모스크바엔 적막감만…푸틴도 프리고진도 '침묵'
극적 반란 중단 후 모두 공식 석상에 두문불출…여론은 양분
벨라루스 "프리고진 어디 있는지 우리도 몰라"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반란에 나선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코앞까지 진격하는 일촉즉발 사태가 황급히 정리된 다음 날인 25일(현지시간) 러시아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고 블룸버그,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이 전했다.
전날 자신의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집권 2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던 블라디미르 푸틴(70) 러시아 대통령도 전날 TV 연설에서 굳은 표정으로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을 겨냥해 "반역자", "가혹한 처벌"을 운운한 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혼란스러운 24시간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 중이던 프리고진은 전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바그너 그룹 용병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그날 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은 모스크바를 약 200㎞ 남긴 지점에서 극적으로 진격을 멈추고 철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루카셴코가 중재한 협상에 대해 논평하지 않고 있다.
다만 크렘린궁은 프리고진이 모든 혐의가 취소된 상태로 벨라루스로 망명하는 것에 푸틴 대통령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전화해 사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이 경질을 요구했던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활발히 자신의 입장을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표명하던 프리고진은 전날 밤 유혈사태를 피해 철수한다는 텔레그램 음성 메시지를 공개한 이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그가 바그너 그룹이 장악했던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날 때 검은색 차 안에서 군중의 환호에 화답하는 모습이 SNS에 공개된 것이 그의 마지막 행적이다. 프리고진은 창문을 내려 사람들과 악수하고 '셀카' 요청에 응하기도 했다.
그가 현재 벨라루스에 도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 CNN에 따르면 벨라루스 관리들은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어떤 지위를 가질지 자세히 알지 못하며, 그가 이미 현지에 도착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프리고진 소유 기업 콩코드의 홍보 담당자는 "모든 질문은 프리고진에게 전달됐다. 그는 모두에게 안부를 전했고, 적절한 소통이 가능할 때 대답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반란 소식에 긴급 조치를 잇달아 내렸던 러시아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치들을 해제하고 있다.
바그너 그룹을 막으려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급히 설치된 방어벽 등은 하루 만에 철거됐다.
러시아은행은 월요일인 26일 모스크바에서 외환 거래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그너 그룹이 접수했던 보로네시와 리페츠크 지역의 관리들은 용병들이 이 지역을 떠나 야전기지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AP, AFP 통신은 노천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주요 관광지를 거니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도했다.
이와 같은 모스크바의 풍경은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불확실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WP는 보도했다.
모스크바시 당국은 세르게이 소뱌닌 시장이 선언한 '대테러 체제'에 따라 휴무일로 지정됐던 26일은 계속 휴무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인구 100만명 도시 보로네시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는 '페트르'(46)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이 갑자기 일어났다"며 반란 사태로부터 받은 충격파를 전했다.
WP는 러시아 고위 관리들 사이에서 푸틴 대통령을 반대하는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고 전했다.
프리고진에게 열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처벌하지 않기로 한 것에 실망한 사람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영향력 있는 블로거인 미하일 즈빈추크는 "러시아 군 지도부에 대한 의문들이 있다"며 "전쟁이 잘못돼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친러시아 반군이 수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알렉산드르 호다콥스키 사령관은 반란에 기뻐하는 사람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바그너 그룹은 아스팔트가 아닌 사람들의 심장을 지나 진격했고, 사회를 반으로 갈라놓았다"고 비난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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