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반대' 스티커 도배된 파리 공용 자전거…곳곳서 비판
한 생명권 단체, '헌법상 낙태 보장' 움직임 맞서 게릴라 캠페인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프랑스 파리의 공용 자전거 '벨리브(Velib)'가 의도치 않게 낙태권 논쟁에 휘말리게 됐다고 미국 CNN 방송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논란은 '생존자들(Les Survivants)'이라는 한 생명권 단체가 지난달 말 게릴라식으로 벌인 캠페인이 발단이 됐다.
이 단체는 시내 곳곳의 벨리브에 "만약 당신이 그를 살렸다면?" 등의 슬로건과 함께 태아가 성장해 소년이 된 뒤 행복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의 스티커를 붙였다.
'생존자들'은 지난달 24일 단체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만들려는 프랑스 내 움직임에 맞서 이번 캠페인에 나섰다고 밝혔다.
단체는 "낙태를 헌법에 명시하려는 법안이 발의된 지금, 우리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행동하기로 결정했다"며 "우리는 낙태가 생명권과 같은 기본권이 되는 '이분법적' 헌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존자들'은 프랑스에서 낙태가 합법화한 1975년 이후 낙태 위협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단체는 설명했다.
이는 즉각 정치권과 여성 인권 단체의 비난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용납할 수 없는 불법"이라고 비판했고, 이자벨 롬 성평등부 장관 역시 "낙태권을 훼손하는 그 누구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전국 여성 권리 단체의 수지 로트만 대변인은 이번 캠페인이 오히려 프랑스에서 낙태법을 보장해야 할 시급성을 드러냈다고 CNN에 말했다.
1974년부터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활동해 온 로트만은 "우리는 낙태권이 미국에서처럼 언제든 도전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려와 경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임신 약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이후 미국 내에선 현재까지 20여개 주가 낙태 제한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이 같은 낙태 제한 움직임은 프랑스 사회 전반에 충격파를 던졌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자유가 훼손되고 있는 여성들"과의 연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 하원과 상원은 낙태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양원이 각각 처리한 헌법 개정안이 서로 달라 관련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서 헌법을 개정하려면 하원과 상원이 동일한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국민 투표를 거쳐야 한다.
하원은 지난해 11월 낙태할 "권리"를 명기한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상원은 지난 2월 통과한 개정안에 낙태할 "자유"라고 표현했다.
CNN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내 다른 국가들에서도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이웃 국가이자 로마 가톨릭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선 에우제니아 로첼라 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먹는 낙태약인 '미페프리스톤' 사용 연장에 반대하기도 했다.
CNN은 앞서 이탈리아 의사의 약 70%가 '양심적 거부'를 이유로 낙태 시술을 거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많은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스페인 역시 중도 우파와 극우 정당이 2010년부터 시행 중인 낙태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며,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도 낙태 허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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