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체스판 뒤흔들었다"…댐 파괴, 러-우크라 누가 손해일까
우크라 대반격 작전엔 차질…"푸틴, 진격 늦추려 댐 파괴" 관측
크림반도 물부족 보면 러 타격…그래도 전문가 '러 소행설' 무게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주의 카호우카 댐 붕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댐 붕괴가 러시아 점령지 탈환을 위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으로 관측되는 미묘한 시점에 벌어진 만큼 전쟁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BBC 방송은 6일(현지시간) '댐을 파괴하면 누가 이득을 보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카호우카 댐 붕괴가 지난해 발생한 해저 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 폭파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스를 직수출하는 주요 경로인 노르트스트림 폭파 사건의 배후로 서방이 러시아를 지목했는데 이번에도 러시아를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리도 피해를 보는데 왜 이런 일을 벌이겠느냐'며 반박하고 있다.
BBC는 카호우카 댐 붕괴의 경우 러시아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자국의 이익을 해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우선 댐 붕괴로 하류 지역에 물이 범람하면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가 민간인은 물론 자국군을 헤르손과 드니프로강 유역에서 동쪽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의 물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BBC는 전했다. 건조한 기후의 크림반도는 카호우카 댐과 가까운 운하에서 나오는 담수에 의존해왔다.
BBC는 그러나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감안해 더 넓은 맥락에서 카호우카 댐 붕괴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우크라 대반격 차질? 기갑부대 남부 진격에 산통 깨졌나
우크라이나 남부를 관통하는 드니프로강에 있는 카호우카 댐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에 전략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돼 왔다.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성공하려면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잇는 지역을 장악한 러시아의 방어선을 뚫어야 하는데 러시아는 지난 몇 달 동안 남부 아조우해로 향하는 우크라이나의 진격을 막기 위해 강력한 요새를 구축해왔다.
우크라이나가 자포리자 남쪽의 러시아 방어선을 뚫고 그 지역을 둘로 나눌 수 있다면 크림반도를 고립시키고 중대한 전략적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호우카 댐이 붕괴하고 하류 지역이 침수되면서 헤르손 건너편 동쪽 강둑 지역은 우크라이나 기갑 부대가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 됐다고 BBC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으로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진격로가 막힌 셈이다.
러시아는 과거에도 드니프로강에 있는 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전력이 있다. 소련은 1941년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진격을 막기 위해 드니프로강의 댐을 폭파했다. 당시 댐 폭파로 인한 홍수로 수천 명에 이르는 소련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BBC는 "카호우카 댐을 파괴한 쪽이 누구든 우크라이나 남부의 전략적 체스판을 뒤흔들어 양측이 (전략적으로) 많은 주요한 조정을 하게 하고,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공언해온 반격의 다음 단계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크림반도 물공급 결딴나나…"푸틴, 양보할 수도" 관측까지
뉴스위크는 '푸틴이 크림반도를 포기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댐 붕괴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보는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희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번 댐 붕괴가 군사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정책분석센터의 연구원 엘리나 베케토바는 뉴스위크에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드니프로강 왼쪽(동쪽) 강둑으로 진격할 수 없게 해 우크라이나의 점령지 탈환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움직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퇴역 육군 중장 스티븐 트위티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댐 파괴를 명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도 전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봐왔다며 "댐이 범람하면 물이 농지 등으로 흘러들어 땅이 진흙탕이 되고 장갑차가 진흙탕에 갇혀 통과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경제학자 안데르스 오슬룬드는 카호우카 댐 붕괴를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하면서 유정에 불을 지른 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경제 고문을 지낸 그는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영토를 잃었을 때 영토를 파괴한다. 이것은 포기할 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공격적인 행동이 아니라 신포도"라고 했다.
그는 "크림반도로 가는 물의 85%를 공급하는 북크림 운하는 노바 카호우카에서 물을 가져온다"며 "이 운하가 없으면 크림반도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퇴역 미 해병대 대령 마크 캔시언은 푸틴 대통령에게 크림반도는 엄청난 전과라며 "러시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크림반도를 고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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