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목적이라고?…伊 '스파이보트' 전복 사고에 의혹 증폭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최근 이탈리아 관광지 호수에서 전복된 보트에 이탈리아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전현직 비밀 요원들이 대거 타고 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상 스파이 모임'의 목적을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저녁 이탈리아 북부 명승지 마조레 호수에서 승객 21명과 승무원 2명을 태운 관광용 보트가 폭풍우로 전복돼 4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사건은 단순히 관광객들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승객 중 13명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현직 요원이고 8명은 이탈리아 정보기관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커졌다. 사망자 4명 중 2명은 이탈리아 정보부 소속이었고 1명은 모사드 전 요원, 나머지 1명은 보트 선장의 부인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양국 비밀요원들이 사고 전날 북부 롬바르디아에서 정보교환을 했으며 이스라엘 요원들의 귀국 일정이 지연되면서 마조레 호수 관광에 나섰다 악천후로 사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이 궂은 날씨 속에 단체로 보트에 탄 목적이 정말 관광이었는지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보트 선장이 불가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 숨진 부인은 러시아인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양국 정보요원들이 호수 인근에 투자한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를 조사하기 위해 호수 일대를 뒤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근 이곳에 올리가르히들의 부동산 투자 등 동향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고를 서둘러 수습하고 관련 정보를 최대한 숨기려는 양국 당국의 석연찮은 태도도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탈리아 정보당국은 사망자 중 2명이 자국 요원이 맞는다고 확인했으나, 당시 일행 중 생일을 맞은 이를 축하하려 양국 요원들이 선상 모임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자세한 설명을 피했다.
살아남은 승객들은 불과 몇시간 만에 호수에서 납치되듯 사라졌고, 현지 경찰에 사고 관련 조사를 받을 때도 누구도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번 사고를 조사 중인 이탈리아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보트가 뒤집혀 소지품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도 속이려 했다. 이탈리아 측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총리실 소속이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생존자들은 정부 대표단의 일원이라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고 후 3일이 지난 지난달 31일에서야 이스라엘 사망자가 모사드 전 요원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모사드는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사망자의 신원은 밝히지 않은 채 "은퇴 후에도 수십년간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봉사했던 헌신적이고 전문적인 요원이자 친구를 잃었다"고만 밝혔다. 전직 모사드 요원의 장례식은 31일 이스라엘 아슈켈론에서 열렸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방부 고위관리에 따르면 숨진 모사드 전 요원은 외국 정보기관과의 비밀 연락을 담당하는 부서 소속으로 은퇴 후에도 예비역으로 계속 근무했으며, 이탈리아 정보기관과의 교류·협력을 위해 동료들과 이탈리아를 방문했다.
이탈리아 검찰은 보트가 전복돼 가라앉게 된 사고 경위를 수사할 뿐, 탑승자들이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카를로 노체리노 검사장은 다만 침몰한 보트가 인양되면 보트와 그 안에 있는 물건은 모두 압수 대상이라며 "우리가 소극적으로 수사한다는 의심은 남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탑승 목적이 무엇이든 양국 비밀요원들은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는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당일 낮에만 해도 날씨가 화창했다. 오후에 폭풍우 경보가 내려졌지만 시속 60㎞에 달하는 돌풍이 일 정도로 날씨가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는 예보는 없었다.
사고 보트가 있던 곳은 강력한 하강기류로 바람이 더 강하게 불었을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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