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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와 휴지조각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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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와 휴지조각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이스라엘 방식' 안전보장 추진 계기로 과거 역사 조명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과거 소련 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후 독립하면서 갑자기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됐다. 1천240개의 전략 핵탄두와 176기의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 44대의 전략 폭격기, 그리고 대략 2천개 추정되는 전술 핵탄두 등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남게 된 것이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를 이끌던 지도자들은 핵무기 포기를 선택했다. 1994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 됐고, 이듬해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했다.
그 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4회에 걸쳐 핵탄두를 모두 러시아로 이전했으며, 2002년 1월까지 자국 영토 내 모든 전략 폭격기들을 해체해 러시아로 이전하거나 비군사용으로 전환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이런 조치에 반대하는 기류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의회와 군부에서는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러시아로부터 정치적 군사적인 압박을 받을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정부를 이끌던 지도자들은 러시아라는 핵 강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소규모 핵을 갖는 것은 오히려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우크라이나의 재건과 안전보장을 담보할 새로운 장치를 강구했다.
그것이 1994년 12월 러시아, 미국, 영국과 함께 '핵무기 포기'와 '영토·주권 보존, 정치적 독립'을 맞교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서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을 계기로 과거 우크라이나가 선택했던 '자발적 핵폐기' 사례가 다시 부각됐다. 특히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휴지조각이 된 결과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됐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주저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 핵심 이슈였다.



러시아와 1년 넘게 교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향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확보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기를 원하지만 그리 쉽게 될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이스라엘식'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몇달 동안 소모전이 벌어졌던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지역 대다수를 러시아군이 점령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공격으로부터 차단할 새로운 안전보장 방안이 급선무로 부상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했다. 이스라엘 방식의 안보 보장 합의를 통해 무기와 첨단 기술 전수에 집중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스라엘은 나토 회원국이 아니며 미국도 이스라엘과 안보 조약을 맺고 있지 만 수십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특별 지원 수혜를 받아왔다.
결국 이스라엘 방식을 우크라이나에 적용하는 것은 나토 가입 절차를 우회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을 염두에 군 것으로 분석된다.
오는 7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에서 이 방안의 추진 여부에 대한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담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lw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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