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40년 유명 시사만평, 구의회 선거개편 풍자 후 퇴출(종합)
명보 "14일 연재 종료" 발표…사유는 밝히지 않아
시사만화가 "'홍콩의 이야기'의 일부…앞길 험난하겠지만 방법 있어"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40년 역사의 유명 시사만평이 구의회 선거제 개편을 풍자한 직후 퇴출당했다.
홍콩 유력지 명보는 1983년부터 '쭌쯔'라는 필명으로 두 개의 시사만평을 게재해온 시사만화가 웡커이콴의 시사만평이 오는 14일부로 연재가 종료된다고 11일 발표했다.
그러면서 "명보는 지난 40년간 우리와 함께 시대의 변화를 지켜봐 온 쭌쯔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재 종료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홍콩 저명 시사만화가 웡커이콴은 그간 명보에 한 컷과 세 컷 짜리 시사만평을 매일 연재해왔다.
웡커이콴은 명보 조치의 배경을 묻는 다른 홍콩 언론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시사만평이 퇴출당한 것을 현재 '홍콩의 이야기'의 일부라고 설명하면서 앞길이 험난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방법은 있어왔다고 밝혔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그는 앞서 AFP 통신에 명보가 더 이상 자신의 시사만평을 싣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만화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뿐"이라고 말했다.
홍콩 당국은 지난 9일 명보에 실린 웡커이콴의 3단 시사만평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만평에서 한 남성은 한 여성에게 홍콩 각 지역 위원회 대표자들은 모든 시험과 건강검진에서 탈락할지라도 해당 지역 공무원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대표로 발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일 발표된 홍콩 구의회 선거 개편안을 풍자한 것이다.
홍콩 구의회는 직전 선거인 2019년 11월 선거를 통해 선출직 452석(94%), 당연직 27석 등 479석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개편안은 선출직을 88석(19%)으로 대폭 감축하고 대신 정부 임명직 179석, 지역 위원회 3곳(구위원회·소방위원회·범죄수사위원회)이 선출하는 176석으로 구의회를 구성한다. 또 27석은 지역 대표들이 채운다.
시사만평 속 남성은 이중 친중 진영 2천490명으로 구성된 지역 위원회 3곳의 구성원에 대해 "중국어·영어·수학 시험에 떨어져도, 높은 콜레스테롤·비만·심장 질환·작은 키·색맹·근시안 등이 있어도 모든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공무원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한 그들은 지역 위원회에 임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해당 위원회를 관할하는 홍콩 민정청년사무국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당 시사만평이 지역위원회 선발 원칙을 왜곡하고 관련 질환자들을 모욕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웡커이콴의 시사만평은 이전에도 경찰, 국가안전처 등 정부 부처 최소 5곳의 분노를 산 바 있으며, 20여년 전에는 마카오와 싱가포르에서도 금지된 적이 있다고 AFP는 전했다.
SCMP는 지난해 7월 현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이 취임한 이후 웡커이콴의 시사만평에 대한 정부의 비판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그가 이날 명보에 게재한 시사만평에는 중국 저가 단체 여행객과 구의회 개편안에 대한 지지 서명을 모으는 거리 부스가 등장했다.
홍콩에는 최근 국경 재개방 후 몰려오는 저가 중국 단체 여행객들로 인한 통행과 위생, 혼잡 문제 등이 제기됐다.
웡커이콴은 2021년 당국의 압박 속 자진 폐간한 반중 매체 빈과일보에도 시사만평을 연재했었다.
그는 과거 AFP에 "농담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며 "권력은 대중이 자신들을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믿게 하려고 하지만 농담은 그 모든 것을 재빨리 꿰뚫고 거짓을 밝혀낸다. 농담은 권력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AFP는 "중국이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후 제정한 국가보안법과 함께 홍콩 당국이 선동죄를 다시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홍콩에서 정치적 풍자는 법적 위험에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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