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단 하르툼에 갇힌 딸, 매일 살려달라 애원하며 웁니다"
이집트로 피신한 수단 피란민, 두고 온 가족·길어지는 분쟁에 한숨
피란민 몰리면서 수단인 밀집거주지 임대료 4∼6배 급등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시집간 딸은 아직도 손녀 네 명과 함께 하르툼에 갇혀 있는데, 매일 살려달라고 웁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기자 주(州)의 경계에 위치한 도끼의 모한디신 거리에서 8일(현지시간) 만난 수단 피란민 후사마 모함마드(60)씨는 요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이집트로 피신했지만, 딸과 손녀들이 아직 격전지인 수도 하르툼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내 임시 거처로 기자를 안내한 그는 "딸은 아직 네명의 손녀와 함께 하르툼에 갇혀 있다. 물과 전기는 물론 식량도 거의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매일 구해달라며 울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모함마드씨는 "딸을 이집트로 데리고 와야 하는데 분쟁 여파로 수단 내 물가가 너무 뛰어 지금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최근엔 하르툼에서 카이로까지 오는 버스표 한장이 1천500달러(198만원)나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간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수십만명의 수단 주민들이 피란길에 올랐다.
피란민 대부분은 수단 내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했는데 일부가 국경을 넘어 이집트, 차드, 남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등 이웃 국가로 피신했다.
대개 후사마씨처럼 그나마 경제적 사정이 나은 피란민들이 이집트로 넘어오고, 그 중 대부분은 아랍권 외국인 집단 거주지인 모한디신으로 몰려왔다.
모한디신 거리에 있는 한 찻집 종업원은 "하루 수백명의 피란민들이 도착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얼굴들이 눈에 띈다"고 귀띔했다.
매일 수백명의 수단 피란민이 몰리면서 모한디신의 수단인 집단 거주지역의 주택 임대료가 분쟁 발생 전보다 4∼5배가량 뛰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일단 전쟁의 공포를 피한 피란민들은 호구지책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보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이집트에서 피란민이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모한디신 거리를 서성거리던 바셰르 하산(28)씨는 "분쟁이 시작됐을 때 하르툼 인근 옴두르만에서 며칠간 총성과 포성을 견뎌내며 버티다 탈출했다. 500달러나 하는 버스표를 어렵게 구해 이집트에 왔지만, 이곳 상황도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수단에서 에어컨 설치 기사로 일했다는 그는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2주째 거리에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아직…"이라며 "가지고 온 돈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압둘 파타 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수단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사령관의 RSF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중재로 휴전 협상을 벌이고 있다.
피란민들은 어렵게 성사된 휴전 협상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양측이 '끝장 싸움'을 예고한 탓에 쉽사리 휴전이 성사되지 않으리라는 불안감도 떨치지 못한다.
하르툼에서 의사로 일하며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는 모헤야르 아흐메드(35)씨도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만 기약이 없다"며 "가족들과 함께 사우디나 영국으로 가고 싶지만, 의사면허증 등을 집에 두고 온 데다가 절차가 복잡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군벌간 분쟁이 터지기 직전 병든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이집트로 건너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모함마드씨는 "수단 군인들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 있다. 이번에도 끝까지 싸울 가능성이 있다. 양측이 평화 협상을 하고 있지만 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산씨는 "뉴스를 통해 수단의 상황을 매일 접하고 있는데 상황이 정말 좋지 않은 것 같다. 하르툼에는 이제 민간인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며 "전쟁만 끝나면 곧바로 옴두르만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언제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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