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푸틴 암살하려 드론 공격?…"크렘린 자작극 가능성도"(종합)
15분 간격 돔 지붕서 2차례 폭발…러 "푸틴 암살 시도" vs 우크라 "자작극"
전현직 미 당국자들 "위장 전술 가능성"…미 싱크탱크도 러 소행 무게
"우크라 공격이면 러 대망신"…ISW "러, 전쟁 동원 확대 노리는듯"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에 대한 무인기(드론) 공격이 발생하자 공격을 벌인 배후와 그 목적 등에 대한 관측이 무성하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보복을 벼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크렘린궁도 안전하지 않다'는 심리적 효과를 겨냥해 공격에 나섰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는 가운데, 러시아가 자국민에게 전쟁의 명분과 광범위한 사회 동원의 필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관측도 강하게 제기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새벽 모스크바 크렘린궁 상공에서 15분의 시차를 두고 연이어 드론이 폭발하는 영상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영상을 보면 공중에서 크렘린궁 건물의 돔 지붕을 향해 남쪽에서 비행체 하나가 날아들고, 15분 뒤에는 동쪽에서 두 번째 비행체가 날아든다.
두 비행체 모두 폭발했고, 짧게 화염을 일으켰다.
크렘린궁에는 푸틴 대통령 집무실과 거처뿐 아니라 기념식장, 상원 등이 있다.
크렘린궁은 성명에서 "전날 밤 우크라이나가 무인기로 크렘린궁 대통령 관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며 "2대의 무인기가 크렘린궁을 겨냥했으나 군이 전자전 체계를 적절히 사용해 이들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는 이를 러시아 대통령의 생명을 노린 계획적인 테러 행위로 간주한다"며 "러시아는 적합한 시기와 장소에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 "젤렌스키와 그 파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암살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크렘린궁에 대한 공격 당시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30㎞가량 떨어진 모스크바 근교에 있었다고 말했다.
핀란드를 방문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헬싱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푸틴이나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며 러시아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푸틴은 승리가 없고, 그의 국민들에게 동기 부여가 필요할 것"이라며 전장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러시아가 자국민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려 이런 일을 계획했을 가능성을 지목했다.
전·현직 미국 당국자들은 NYT에 러시아가 '거짓 깃발(false flag) 작전', 즉 위장 전술을 썼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단정하기에는 이르며 미 정보기관들이 사태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국방외교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날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자국민에게 이번 전쟁의 명분을 강조하고 더 광범위한 동원령의 판을 깔기 위해 이번 공격을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ISW는 "러시아가 국내 방공능력을 강화해온 만큼 드론이 겹겹의 방공망을 뚫고 크렘린궁 심장부 바로 위에서 폭발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멋지게 포착됐을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하다"고 짚었다.
크렘린궁이 이런 공격을 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상당한 망신거리가 될 텐데도 일관성 있고 조직적인 반응을 즉각 내놓은 것을 보면 망신살을 상쇄할 만한 정치적 효과를 의도하고 공격을 사전에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고 이 연구소는 지적했다.
크렘린궁이 실제로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실존의 문제임을 자국민에게 환기하고 사회 동원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러시아가 이번 공격을 9일 전승절 행사를 취소·축소하는 핑계로 삼을 수 있고, 그러면서 전쟁이 중요한 국경일 기념마저 위협한다는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민족주의 군사 블로거 일부는 확전을 크렘린궁에 촉구하는 기회로 이번 드론 공격을 활용하는 반면, 친크렘린 성향의 블로거들은 확전에 반대하면서 좀 더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고 있다.
ISW는 이런 반응들로 볼 때 "확전보다는 동원 조치 확대를 정당화하는 것이 이번 거짓 깃발 공격의 목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에 대한 드론 공격 능력은 갖추고 있으며, 실제 공격했다면 푸틴 대통령을 실제로 제거하려는 시도보다는 러시아를 조롱하거나 흔들려는 심리전 차원일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NYT에 따르면 미 연방 자금 지원을 받는 비영리 연구기관 해군분석센터(CNA)의 러시아 연구 프로그램 전문가 새뮤얼 벤뎃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맞는다면 '크렘린궁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드론이 크렘린궁 인근에서 방향을 틀었을 수 있어 영상만으로는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으며, 드론이 러시아 방공망 격추로 폭발한 것인지 원래 목적대로 폭발한 것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라는 러시아의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크렘린궁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고 밤을 보내는 일은 없다시피 하며, 드론이 창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지붕 위에서 폭발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다.
이 매체는 "심각한 암살 시도보다는 러시아 정부에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며 조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450㎞ 이상 떨어진 모스크바 한복판을 공격할 능력 자체는 갖춘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군사 블로그 에이비에이셔니스트 운영자인 다비드 첸초티는 "지난해 선제 공격을 보면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로부터 그와 같은 장거리 공격을 가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입증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드론 전문가인 스티브 라이트 역시 크렘린궁을 타격한 드론이 우크라이나에서부터 날아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 방공망의 집중 공세를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훨씬 근접한 곳에서 띄웠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래프 역시 크렘린궁에서 꽤 가까운 곳에서 무인기들이 출격했을 가능성이 상당하고, 모스크바 내에서 띄웠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중에서도 심장부인 크렘린궁을 공격한 것이라면 러시아에는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다.
러시아 군·연방보안국(FSB) 출신인 이고르 기르킨은 "적군이 모스크바를 폭격한 것은 1942년이 마지막이었다"고 지적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BBC도 이번 드론 공격이 러시아 주장대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라면 크렘린궁에는 커다란 망신거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방송은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경호를 받는 지도자 중 하나로 여겨지던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얼마나 잘 보호받고 있는지, 러시아 방공망이 효과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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