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꺾이지않아…우크라 마라톤에 총 대신 국기들고 땀방울
수도 키이우서 하프마라톤 대회 열려…참전군인 등 1천800여명 참가
수익금으로 의료대대 지원…"우크라, 전쟁 속 대규모 행사 다시 열기 시작"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군복 대신 러닝복을 입고, 총 대신 국기를 손에 쥐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전 군인을 비롯한 수천명이 참가해 전쟁의 시름을 땀방울로 씻어냈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는 '431일 차: 키이우 불굴의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지 431일째 되는 날을 기리고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치료하는 자원 의료대대를 돕기 위한 마라톤 대회다.
키이우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하프 마라톤이 열렸는데 이번에는 러시아와의 전쟁 중에 개최된 만큼 기부 등 여러 의미가 더해졌다. 행사 제목에도 '불굴의, 꺾이지 않는'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1인당 950흐리우냐(약 3만5천 원)의 참가비를 내고 21㎞, 10㎞, 5㎞ 등 3개 코스 가운데 하나를 택해 달릴 수 있었다. 수익금 절반은 자원 의료대대에 기부돼 상처를 묶는 지혈대 등 의료장비를 구매하는 데 쓰인다.
1천800명 이상이 이번 마라톤에 참여했다. 이들은 시내 곳곳의 산책로, 공원, 레스토랑 등을 지나는 코스를 달리면서 잠시나마 전쟁의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범상치 않은 차림새로 마라톤을 즐긴 참가자도 있었다.
폴란드 출신의 코스마 잘레프스키(19)는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인 복장을 갖춰 입고 21㎞ 코스를 1시간43분 만에 완주해 203위를 차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크림반도 출신의 한 군인 참가자는 기부, 행복, 건강 등 3가지 목적을 위해 이번 마라톤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원 의료대대를 돕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와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내 몸 상태가 어떤지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마라톤에서는 전쟁의 그림자도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
주최 측은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마라톤이 즉시 중단될 것이라면서 레이스 시작에 앞서 모든 참가자에게 인근 방공호 위치를 안내했다.
이날은 다행히 러시아군 공습이 없었으나 불과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에는 키이우를 비롯한 중·남부 여러 도시에 미사일 20여발이 떨어져 최소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1일에도 동부 도시 파울로흐라드를 겨냥한 러시아 측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2명이 숨지고 40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잇달았다.
이 같은 상황 속 열린 이번 하프 마라톤은 우크라이나가 마라톤 등 대규모 행사를 서서히 다시 열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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