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도 고객이었던 퍼스트리퍼블릭 38년만에 간판 내려
부유층 상대 낮은 금리로 장기 대출…기준금리 상승에 직격탄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JP모건 체이스에 인수되면서 지난달 불거진 금융 위기의 여파에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지난달 무너진 실리콘밸리은행(SVB), 뉴욕 시그너처 은행에 이은 이 은행의 붕괴에는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SVB가 스타트업 대상이었다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부유층을 상대로 낮은 금리의 대출을 제공해 왔는데, 결국 이것이 부담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1985년 설립된 이 은행은 설립 초기부터 부유층 고객에게 대출 시 우대 금리 혜택을 제공하며 이들 고객을 유치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도 이 은행의 고객이었다. 이 은행은 2012년 저커버그에게 1.05%의 금리로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제공하기도 했다.
연봉 수십만 달러의 엔지니어를 유치하기 위해 구글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 기업)와도 거래했고, 메타 본사 내에는 지점을 설립해 엔지니어들에게 2.5% 이하의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기도 했다.
부유층을 상대로 한 전략으로 저금리 시대였던 2021년까지 10년간 이 은행의 연간 수익은 4배로 증가했다. 미국 20대 은행에 포함됐고, 일부 지표에서는 JP모건 체이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보다도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부유층을 상대로 한 이런 장기 저리 대출은 급격한 금리 인상을 맞닥뜨리면서 독이 됐다.
지난해 예금은 13% 늘어났지만 이는 오히려 부담이 됐다. 작년 4분기에만 예금 이자로 4억2천800만 달러(5천739억원)가 빠져나갔다. 1년 전의 2천만 달러(268억원)에서 많이 증가했다.
이 은행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만기 투자 포트폴리오 손실은 48억 달러(6조4천368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의 5천300만 달러(710억원)보다 크게 불어났다.
지난해 대출의 절반 이상이 평균 금리 2.89%의 주택담보대출이었는데, 금리 상승으로 시장 가치는 220억 달러(29조5천억원) 감소했다.
2022년 말 은행 예금은 1천764억 달러(236조5천524억원)로, 25만 달러(3억3천500만원)를 초과해 예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은행 자금은 68%에 달했다. 예금은 은행 자금의 92%를 차지했다.
지난달에는 맨해튼의 한 콘도 매수자에게 30년 만기로 1억 달러(약 134억원)를 대출했다. 금리는 4.6%였다.
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맨해튼 고가 주택 주택담보대출 금리(5.5%)는 물론,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자료 기준 30년 만기 고가 주택담보 대출 평균 금리보다도 1∼2% 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이런 지표가 드러나면서 불안에 느낀 고객들이 지난달에만 1천억 달러(134조원)를 인출해 가는 등 현금 대량 인출 사태가 불거졌다.
대형 은행 11곳이 300억 달러(40조원) 지원에 나섰지만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결국 불을 끄지 못하고 38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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