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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英 독자 대화 "'희랍어 시간' 주인공처럼 낙태될 뻔"
'희랍어 시간' 발간 맞춰 5년 반 만에 영국 방문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행사 "이례적 매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한강 작가가 '희랍어 시간'을 들고 5년 반만에 영국을 방문해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한 작가는 '희랍어 시간' 영국 출간을 기념해서 23일(현지시간) 저녁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퍼셀룸에서 개최된 독자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했다.
황금시간대라고 하기 어려운 일요일 저녁 시간이지만 약 300석 규모 행사장은 가득 찼고, 관객들은 성별·연령·인종이 다양했다.  
'희랍어 시간'이 아직 정식 출간 되기도 전인데 이렇게 보인 것이다.
사우스뱅크센터 문학 행사 담당자는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자라는 점도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국 작가로선 처음으로 수상했고 2018년엔 '흰'으로 최종 후보에 올랐다. 관객들의 질문을 보면 두 소설을 모두 읽어본 경우가 많은 듯했다.
한강 작가는 통역과 함께 무대에 올랐지만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행사에서 대부분 유창한 영어로 직접 소화했다.
입장료 15파운드(약 2만5천원)를 내고 온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한 작가의 차분한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간혹 농담할 때는 크게 웃으며 호응했다.

한 작가는 소설 속 인물에 깊이 공감하는 것 같은데 어떤 기술을 쓰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는 자신도 '희랍어 시간' 여주인공과 비슷하게 태아 시절에 낙태될 뻔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티푸스에 걸려서 낙태하려고 했는데 어려운 단계라서 의사가 나중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후 내가 안으로 움직여서 어머니가 의사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랄 때 친척들이 '어머니한테 잘해라'라면서 이 얘기를 많이 해줬는데 들을 때마다 삶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고 아주 연약한 층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운 좋게 태어난 것 같고 죽음·사라짐이 멀지 않다"면서 "그런 방식으로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쓰고 나면 주인공들을 뒤에 남겨두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희랍어 시간'의 또 다른 주제가 슬픔인 것 같다는 질문에는 "슬픔을 생각하며 썼다. 우리가 가장 연약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순간을 생각했다"며 "힐링이란 표현을 안 좋아하지만 힐링 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소설을 끝내고 싶지 않아서 계속 붙들고 있느라 짧은 책인데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희랍어 시간'을 쓰고선 가벼운 내용으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갑자기 내면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가야 했고 대학살을 다뤄야 했다"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 인물의 감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에 관해서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예외적으로 쓰기 힘들었다"며 "견뎌내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했으며,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와 산문이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다"며 "소설을 쓸 때 시가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이 책을 시인들이 좋아한 것이 시가 나와서가 아니라 시적 상태가 들어왔다 나가곤 하는 책이어서 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쓸 때 리듬을 생각하느냔 질문에 "쓰면서 읽고 들어본다. 사운드와 리듬이 중요하다"며 "번역 후에는 언어가 다르니 리듬이 다른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와 '희랍어 시간'의 여주인공들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단호한 성격이고 아주 강한데 유일한 문제는 인류로서 존재하길 거부하는 것이고, '희랍어 시간' 주인공은 언어를 밀어내지만 회복하고 아이도 데려오고 세상도 품고 싶어 한다"며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것으로 내 방향이 변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독자들도 생각하면서 글을 쓰냐는 질문에 "소설을 못 끝낼 것 같다고 괴로워하느라 독자들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언어는 마법과 같아서 내 감각과 감정을 문장에 넣으려고 최선을 다하면 전기처럼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며 "책이 나오면 독자들과 협업이 시작되는 느낌이고, 독자들의 말은 감동적이어서, 나를 껴안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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