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서 美헬기 띄워 대피…살얼음판 속 일부 국가는 대기령
각국 앞다퉈 자국민 대피 작전…교전 이어져 하늘길·육로 모두 난항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수단에서 군벌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각국이 현지에 체류 중인 자국민 대피를 속속 개시했다.
수단 사태 9일째인 23일(현지시간) 미국은 헬기를 띄워 현지 주재 미국 대사관 인력을 공중 수송했고, 사우디와 프랑스 등도 각각 긴급 작전으로 자국민을 빼냈다.
'아비규환' 상황에서 육로로 빠져나오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지만 군벌들이 휴전 합의를 무시하고 교전을 이어가고 있어 탈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 하르툼의 美대사관 위로 헬기 급파…육로∼항구 통한 대피 행렬도
AP와 AFP, 블룸버그,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자국 외교관과 그 가족 등 70명의 철수를 완료했다고 이날 밝혔다.
미군은 이번 작전에서 인근 지부티에 주둔 중인 특수작전부대원 100여명과 치누크(MH-47) 헬기 3대 등을 1천288㎞ 떨어진 수단의 수도 하르툼의 미국 대사관으로 급파해 직원들을 에티오피아로 대피시켰다.
헬기들이 하르툼에 1시간도 채 머무르지 않았을 정도로 작전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대피가 이뤄지는 동안 수단 군벌의 총격은 없었으며 사상자도 없었다고 AP는 전했다.
한 미국 관리는 블룸버그와의 통화에서 헬기 중 한대가 귀환 시 연료보충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작전은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AP는 미군이 직접 자국 대사관 직원 대피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문 일로 보통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도 이날 '신속 대피 작전'을 통해 수단 주재 외교관을 비롯한 자국민들의 대피를 시작했으며, 유럽과 동맹국 국민도 지원 대상이라고 밝혔다.
안-클레르 르장드르 프랑스 외교부 대변인은 "유럽의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를 비롯해 모든 관련 당사자와 이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비규환이 된 하르툼에서 육로 탈출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전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민 등 157명을 철수시켰다. 사우디 외무부는 자국민 91명 외에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인도, 필리핀, 캐나다 등 12개국 국민 66명이 사우디 서부 제다에 안전하게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수단 현지에서 차량으로 동부의 홍해 연안 항구도시 포트수단으로 이동한 뒤 배편으로 제다로 이동했다고 사우디 국영방송은 보도했다.
요르단도 수단에서 자국민 300명의 철수를 시작했다고 전날 밝혔다. 요르단도 사우디의 대피 루트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수단에 자국민 1만여명이 체류 중인 이집트는 하르툼 외곽에 있는 자국민들에게는 자국과의 국경지대 와디할파에 있는 영사관과 포트수단의 영사관으로 이동하라고 알렸다.
튀르키예도 육상 작전으로 자국민과 다른 국민들을 대피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미국인과 다른 나라 국민이 하르툼에서 포트수단까지 육로로 성공적으로 이동했으나 연료나 물, 식량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경로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밖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일본 등도 자국민 철수를 위해 군용기를 지부티 등 인근 국가에 대기시키고 있다.
◇ 불안정한 상황에 美 "민간인 탈출 작전 없다", 캐나다 "현재 대피 불가능"
이처럼 각국이 앞다퉈 자국민 대피에 나섰지만 현장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해 작전 수행이 쉽지 않다.
AP는 현지 공항 대부분이 전쟁터가 됐고 수도 밖으로 이동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대규모 구조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관리들도 현지에 자국 민간인들이 남아있지만 더 광범위한 대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AP는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대사관 등 정부 직원과 가족 외에 수단에 있는 자국 민간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피 계획은 없다고 앞서 밝혔다. AP는 현재 약 1만6천명의 미국인이 수단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캐나다 정부도 현지 자국민들에게 대피가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는 지난 22일 트위터를 통해 "현재로서는 대피가 불가능하며 지금 위치에서 대피하라"면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수도 하르툼의 병원들이 사상자 수천 명으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필사적으로 분쟁지역을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 버스표 가격이 이전의 5배 이상으로 뛰는 등 수단 탈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이집트도 하르툼 시내에 있는 자국민들에게는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대기하라고 요청했다.
◇ 휴전에도 살얼음판…수단 군벌 "탈출 협조" 주장하나 美 "그런 적 없어"
유혈 충돌을 이어가고 있는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의 쿠데타 군정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이끄는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모두 외국인들이 대피하는 데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상황은 이와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RSF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외국이 자국민을 대피시킬 수 있도록 모든 공항을 부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군도 다음날 성명에서 각국이 자국민과 외교관을 안전히 대피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양측은 사흘간(21∼23일) '이드 휴전' 합의에도 하르툼 공항을 포함한 곳곳에서 교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각자 어떤 공항을 장악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하늘길로 자국민을 철수시키려는 국가들은 작전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육로 이동에서 안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RSF 측은 또한 미군의 자국민 대피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조정을 했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이를 부인했다.
존 배스 미 국무부 차관은 "소셜미디어에서 RSF가 우리와 협력해 (철수) 작전을 지원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작전 과정에서 이들의 협조는 우리 군인들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는 정도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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