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 우려 현실로…올해 서울 빌라 절반 이상 하락거래
작년 4분기 대비 올해 1분기 서울 연립·다세대 전세 실거래가 비교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신축 빌라에 사는 정모(32) 씨는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에게 퇴거 통보를 한 뒤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기존 보증금과 비슷한 금액에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수중에 한 푼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간 주변 전세 시세가 최소 수천만원 이상 하락했다는 점이다.
정씨는 "2억5천만원에 계약한 집이지만 최근 시세는 2억원대로 떨어졌다"며 "집주인이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2억3천만원에 내놨지만 아무도 집을 보러 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곳곳에서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올해 1분기 서울에서 전세 거래된 빌라의 절반 이상이 직전 분기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 서울 연립·다세대의 순수 전세 거래 가격을 비교한 결과, 조사 대상 1천471건 중 804건(55%)이 종전 거래보다 금액이 내려간 하락 거래였다.
이는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 동일 단지, 동일 면적에서 전세 계약이 1건이라도 체결된 거래의 최고가격을 비교한 것이다.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이 많았던 은평구, 강남구, 서초구는 그 여파로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하위 대체재인 빌라 전셋값까지 떨어져 하락 거래 비중이 컸다.
은평구는 전세 거래 81건 중 54건이 하락 거래(67%)였고, 강남구는 55건 중 34건(62%), 서초구 72건 중 43건(60%)이 하락 거래로 집계됐다.
도봉구(24건 중 하락 거래 16건·67%)와 양천구(60건 중 하락 거래 38건·63%)에서는 주거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구축 빌라를 중심으로 하락 거래가 발생했다.
이른바 '빌라왕' 등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강서구는 1분기 전세 거래 153건 중 94건(61%)이 하락 거래였다.
실제 거래 내역을 보면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빌라 전용면적 29.98㎡의 경우 작년 11월 보증금 3억원(2층)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지만, 올해 2월에는 같은 면적이 2억5천만원(3층)에 거래돼 3달 새 보증금 5천만원이 떨어졌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보증금이 1억원 넘게 하락해 거래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양천구 신정동의 한 빌라 전용 44.64㎡는 작년 12월 3억5천500만원(3층)에서 올해 3월 2억5천만원(4층)으로 1억500만원 하락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한 빌라 전용 29.16㎡도 작년 12월 4억원(5층)에서 올해 3월 3억원(6층)으로 1억원 떨어졌다.
전세 거래도 줄었다.
지난해 4분기 서울에서 연립·다세대 전세 거래는 1만5천873건 이뤄졌지만, 올해 1분기에는 1만4천962건으로 911건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전셋값 급락에 따른 역전세가 심화할 것을 우려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빌라에서 아파트로 전세 수요가 이전되고 전세 사기와 역전세, 깡통전세 우려로 빌라 전셋값 약세가 이어지면서 역전세 우려가 확산할 전망"이라며 "전세보증금 미반환에 따른 임차인과 임대인 간 갈등과 전세 보증사고 등이 늘어날 수 있어 역전세 우려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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