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의 한은 1년…'쉽고 명확한' 정책소통이 예측가능성 키워
금리 '사전 안내'하고 금통위원 최종금리 견해도 공개…투명성·전달력↑
1년간 금리 2%p 올리며 긴축 주도…직설화법에 시장 '출렁'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대한 민선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오는 2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한은 총재로서는 처음으로 명시적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안내)를 시도하는 등 쉽고 명확한 통화정책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1년간 사상 유례없는 두 차례의 '빅 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비롯해 기준금리를 쉴 새 없이 2%포인트(p)나 올려 긴축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때론 이 총재의 솔직한 직설화법이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 "3.75% 금통위원 5명" 공개로 점도표 효과…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로 환율 안정
지난해 4월 이 총재 취임 이후 한은의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소통) 방식은 뚜렷하게 바뀌었다.
그는 같은 해 5월 26일 처음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 간담회에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이후 추가 금리 인상이 잇따를 것'이라고 대놓고 예고했다.
심지어 '당분간'이라는 단어에 대해 "당분간을 수개월로 해석하는 것은 제 의도와 부합한다"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처럼 쉬운 구어체의 '이창용식' 화법은 이전 한은 총재들의 "당분간 통화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 나간다",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 등의 모호한 메시지와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개혁적 소통의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7월 13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등장한 포워드 가이던스였다.
당시 이 총재는 "오늘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0.50%p 인상한 만큼, 물가 흐름이 전망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당분간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미래 통화정책 방향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예고하는 것을 말하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이 도입했지만 한국에서는 이 총재가 처음 시도했다.
심지어 올해 1월 통화정책방향 회의부터는 각 최종금리 수준을 지지하는 금통위원 수까지 공개되고 있다.
이 총재는 1월 회의 직후 "금통위원 3명은 3.50%, 3명은 3.75%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전했고, 2월과 4월 "(총재를 제외한) 6명의 위원 가운데 5명이 여전히 3.75%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소개했다.
아직 한은 금통위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처럼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를 통해 금통위원들의 구체적 금리 전망 분포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이 총재의 공개 발언으로 사실상 점도표와 같은 효과를 얻고 있다.
아울러 이 총재는 외환·금융시장 불안에도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와 함께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반까지 치솟자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를 체결해 시장 안정에 기여했고,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단기 자금시장 경색이 심해지자 적격담보증권 종류를 늘리고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나섰다.
◇ "계급장 떼고 할말 하는 문화" 강조하며 조직개혁…"보수·복지 개선 체감 어려워" 지적도
한은 내부적으로는 조직·인사 혁신이 제1 과제로 추진됐다.
앞서 한은은 조직문화 개혁을 위해 2021년 매켄지에게 의뢰해 진단받았는데,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의 조직 건강도는 100점 만점에 38점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 총재는 취임 2개월 만인 6월 중순 총재를 시작으로 권한을 연쇄적으로 대폭 아래로 넘겨 의사 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의 '경영 인사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6월 창립 제72주년 기념사에서 "서로 존중하면서도 업무에 관한 한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발휘되도록 노력하자"며 "조사역이 점심 자리에서 '지난번 총재님 연설문은 실망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직된 위계질서를 없애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금통위원과 임직원이 주요 현안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하는 '주간현안포럼', 모든 직원이 참여해 경영인사 혁신방안 등을 논의하는 '타운홀 미팅', '총재께 바란다' 익명 게시판 등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 총재 취임 후 신설된 조직 내 소통 채널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고조된 직원 불만의 주요 원인인 보수와 복지 등에서 실질적으로 아직 개선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내부 목소리가 여전히 많은 것도 사실이다.
◇ "포워드 가이던스가 원화절하 부추겨" 공격에 "조건부일뿐 서약·약속 아니다"
이 총재는 취임 이후 1년간 기준금리를 6차례 연속 올렸다. 치솟는 물가와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을 잡기 위해 불가피한 긴축이었지만, 이자 부담 등에 경제주체들의 고통도 금리 줄인상과 함께 커졌다.
이 총재도 여러 차례 "금리가 많이 오르고 경기가 나빠져 국민, 경제주체들의 고통이 심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물가 상승률을 낮추지 않고는 사후적으로 지불할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를 구했다.
지속적 긴축으로 시장과 경제주체들이 모두 한은의 통화정책에 촉각을 세운만큼, 때로는 이 총재의 솔직한 직설 화법이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면서 논란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1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회동 직후 이 총재는 "빅 스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돌출 발언으로 외환·채권시장을 흔들었다.
선구적 포워드 가이던스도 한 때 비난의 빌미가 됐다.
이 총재가 작년 7월 "당분간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뒤 9월 원화 가치가 급락(원/달러 환율 급등)하자, 한국·미국 간 금리 역전과 역전 폭 확대에 대한 기대를 키워 원화 절하를 부추겼다는 공격이 잇따랐다.
더구나 10월 다시 한은이 두 번째 빅 스텝을 결정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통화정책의 대중 전달력과 투명성 등을 개선하고자 도입한 포워드 가이던스가 오히려 물의를 빚자, 이 총재는 역시 직설적으로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소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강연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난 베이스라인(기본가정)에 따른 시나리오(0.25%p 인상)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약(commitment)이나 약속(promise)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마도 제가 전보다 직설적이지 않고 다소 모호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을 알게 될 텐데, 이는 중앙은행원이 배워야 하는 미덕"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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