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위드인] "우리 것이 콘텐츠" 게임사가 문화재에 주목하는 이유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한국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국내 게임사들이 문화재에 관심을 두고 있다.
8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펄어비스[263750]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검은사막' 한국 서버에 신규 대륙인 '아침의 나라'를 업데이트했다.
중세 판타지풍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검은사막' 세계관과 달리, '아침의 나라'는 조선시대를 모티브로 한반도의 자연환경과 전통 건축, 한복, 민속놀이 같은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지역이다.
게임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스토리도 손각시전, 구미호전, 산군전 등 한국 신화와 설화, 민담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15개의 챕터로 구성돼있다.
'아침의 나라' 제작 과정에서는 문화재청,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한국관광공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국가기관과 문화재를 보유한 지자체의 역할이 컸다.
펄어비스는 지난해 문화재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조선왕실 유물, 무형유산, 천연기념물, 해양문화유산, 근대 역사 거리 관련 데이터를 제공받았다.
'아침의 나라' 속 조선시대풍 건축물과 등장인물의 복식을 구현하는 데는 방대한 문화재 데이터가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펄어비스는 조만간 '검은사막' 팬층이 두꺼운 북미·유럽 시장에 '아침의 나라'를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또 차기작인 '도깨비'에도 한국 전통문화를 모티브로 한 건물과 복식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엔씨소프트[036570] 역시 지난달 경북연구원과 '천년 신라 왕경 디지털 복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신라 시기의 문화재를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과 디지털 스캔 기술 지원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엔씨소프트는 현재로서는 이런 행보가 보유한 콘텐츠 제작 기술을 활용한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며, 게임 제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조선시대풍 궁궐과 탈춤, 갓과 도포를 입은 무사 등이 등장하는 신작 게임 '프로젝트 E' 트레일러를 공개한 점을 고려하면, 문화재 복원 활동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가 게임 제작 과정에서 활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제작사 라이엇게임즈의 한국지사인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2012년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76억 원을 기부했다.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한 금액은 ▲ 석가삼존도 ▲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 중화궁인 ▲ 백자이동궁명사각호 ▲ 척암선생문집 책판 ▲ 조선 왕실 보록 등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기여했다.
라이엇게임즈가 문화재나 한국 전통문화를 게임 제작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공헌을 통해 브랜드 평판을 높이고 팬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는 어느 국내 기업보다 적극적이다.
2015년에는 전시회를 열어 LoL의 로고와 캐릭터를 한국화풍으로 그려낸 작품을 공개했고, 2020년에는 한복 명장, 한국화 작가와 협업해 구미호를 모티브로 한 LoL 캐릭터 '아리'의 한복 실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게임 이용자를 정기적으로 초청해 서울의 문화재를 탐방하는 역사 기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정보원은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재와 전통문화가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게끔 지원을 이어왔다.
2016년 문을 연 '문화 공공데이터 광장' 홈페이지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주요 국립 박물관의 유물 정보와 이미지, 3D 파일, 데이터베이스 등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끔 공개돼있다.
지난 7일에는 '언리얼 엔진' 제작사인 에픽게임즈와 협업해 문화재의 패턴·질감 데이터 7종, 19세기 말 지어진 경남 창원의 전통 한옥을 스캔해 제작한 애셋(게임 제작에 쓰이는 데이터) '창원의 집' 등을 전 세계 게임 개발자를 위해 무료로 공개했다.
한국문화정보원 관계자는 "향후 더 많은 전통문화 관련 데이터를 추가로 제공해 게임이나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통 문화와 문화재를 활용한 게임이 늘어나는 추세와 관련해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문화재를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알리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 서양풍 판타지나 공상과학(SF)에서 눈을 돌려 새로운 IP를 발굴하려는 게임사들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근 영화·드라마와 K-POP의 흥행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것도 한몫한다"고 덧붙였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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