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권도형 붙잡힌 몬테네그로 공항 가보니…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유럽 다른 수도 공항에 비해 '초소형'…'도피 중 VIP 대접', 호기롭게 본명 기재된 여권 제시
사회주의 잔재 남은 몬테네그로서 검거 '아이러니'…허무하게 막내린 도주극, 압수품 판도라 상자될까
말아낀 현지 변호사들…단단한 인맥 연결된 '소국'서 법원 움직이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도주 11개월 만에 붙잡힌 곳은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이었다.
권 대표가 '도망자' 신분이어서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겠지만, 왜 몬테네그로란 나라 이름보다 더 생소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을 도주 경로로 택했을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지난 26일 저녁(현지시간)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포드고리차 공항은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규모였다.
터미널도 1개에 불과했고, 이용객 숫자도 많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를 걸어서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지간한 공항은 이런 경우 버스로 이동하는데, 포드고리차 공항은 버스조차 없었다.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입국 심사대와 짐 찾는 곳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입국 수속을 밟은 뒤 짐을 찾아서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입국장이 나왔다. 유럽의 다른 수도에 있는 공항과 비교해 턱없이 작은 규모라서 그만큼 감시도 소홀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 대표는 출국 수속 때 공항 직원에게 코스타리카 여권을 건넸다. 대한민국 여권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코스타리카 여권에 기재된 성명은 본명이었다.
직원이 권 대표에게서 여권을 받아 전산에 입력하자 인터폴의 최고 수배 등급인 적색 수배 명단에 이름이 등록돼 있어 곧바로 경고 표시가 들어왔다. 결국 권 대표는 이틀 전부터 대기하던 전세기에 탑승하지 못하고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권 대표의 수하물에서 발견된 벨기에 여권에는 가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왜 그가 벨기에 여권을 사용하지 않고 본명이 적힌 코스타리카 여권을 사용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 권 대표의 위조 여권 사건을 수사 중인 포드고리차 지방검찰청의 하리스 샤보티치 검사, 권 대표의 몬테네그로 현지 법률 대리인인 보이스라브 제체비치 변호사를 만나 이에 대해 질의했지만 둘 다 답변을 거부했다.
샤보티치 검사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점을 이유로, 제체비치 변호사는 의뢰인의 정보를 발설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각각 함구했다.
권 대표는 가상화폐 테라와 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지난해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이후 두바이를 거쳐 세르비아에 숨어 있던 그는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인접 국가인 몬테네그로로 밀입국했다.
마르코 코바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권 대표의 몬테네그로 국경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불법 입국이 드러나면 위조 여권 사건과 더불어 이 역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몬테네그로 현지법에 따르면 공문서 위조는 최대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중범죄다. 여기에 불법 입국으로 인해 가중 처벌을 받을 경우 권 대표는 잠시 경유하는 곳으로 여겼을 몬테네그로에서 몇 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할 수도 있다.
필립 아지치 몬테네그로 내무장관은 "권도형과 그의 일행은 유난히 놀란 것처럼 행동했다"며 "그들은 세계 다른 곳에서 'VIP 대접에 익숙했다'고 우리 관리들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도피 중에도 세계 곳곳에서 황제 대접을 받아서였을까. 그는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호기롭게 본명이 적힌 여권을 내밀었다. 그렇게 국내외 투자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던 권 대표의 도주극이 허무하게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몬테네그로 수사 당국이 권 대표의 신병 확보와 함께 압수수색한 노트북 3대와 휴대전화 5대에서 "매우 흥미로운 의미있는 분량의 정보가 발견됐다"(아지치 장관)고 하니, 이들 압수품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연합뉴스는 권 대표의 현지 법률 대리인인 보이스라브 제체비치 변호사를 지난 28일 몬테네그로의 아드리아해에 면한 항구도시 부드바에서 만났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제체비치 변호사는 부드바에 도착한 뒤 연락을 취하니 "모스카우 호텔에서 만나자"며 약속 장소를 바꿨다.
'모스카우'라는 호텔 명칭이 낯설어서 재차 되묻자 그는 "러시아, 러시아 캐피털(수도)"이라며 "부드바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니,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말한 대로 호텔 이름이 바로 러시아 수도 명칭이었다. 모스크바의 영어식 표기는 'MOSKOW', 기자가 찾아간 호텔은 모스크바 발음 그대로 'HOTEL MOSKVA'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몬테네그로의 유명 휴양지인 부드바에서 누구나 안다는 그 호텔이 러시아 수도 이름을 여전히 걸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최첨단 분야인 가상화폐 업계에서 천재로까지 불렸던 권 대표가 여전히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 있는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히다니 아이러니했다.
제체비치 변호사는 연합뉴스의 인터뷰 요청을 처음에는 거절하다 변호인으로서 할 수 있는 답변만 하겠다며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고, 실제로 민감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는 사진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다른 한명의 법률 대리인인 브란코 안젤리치 변호사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지 변호사 진용은 철저히 말을 아끼며 '시간벌기' 전략에 나선 듯 했다.
몬테네그로는 인구 약 62만명의 소국이다. 국가 규모가 작아 단단한 인맥으로 연결된 사회다. 몬테네그로 주변에서는 권 대표가 현지 변호사 2명을 고용한 것도 이들의 탄탄한 인맥을 활용해 법원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몬테네그로는 내달 2일 대선 결선 투표를 앞두고 있어 가는 곳 마다 대선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선 결과 자체가 송환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대선이 끝난 뒤 정부가 송환 문제를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다뤄나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권 대표는 현재 포드고리차 외곽에 있는 스푸즈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포드고리차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구치소 입구에는 경비초소 1개와 육중한 철문, 차량 차단기 2개가 설치돼 있었다. 주변은 철조망을 쳐놓아 외부인의 통행을 철저히 통제했고, 경비초소에는 무전기를 든 경비원 4명이 외부인을 막기 위해 경비를 서고 있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