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독일판 '더 글로리'…살인에까지 이른 학폭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독일 10대 여성청소년들 사이에 '더 글로리'를 연상케 하는 집단 괴롭힘을 넘어 살인에까지 이른 극도로 잔인한 학교폭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나라 전체가 깊은 충격에 빠졌다.
독일 서부 프로이덴베르크의 작은 교회에서는 22일(현지시간) 중학교 1학년인 12살 소녀 루이제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토마스 이예브스키 목사는 가족과 친지만 참여한 장례식에서 "우리는 모두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겁다"면서 "우리가 즐거이 동반했을 루이제의 미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루이제가 다니던 통합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강당과 운동장에서 음성 중계된 장례식에 함께하면서 루이제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운동장에서 루이제를 추모하며 풍선을 날려 보낸 학생들은 장례식이 끝나고도 한참동안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지난 11일 친구네 집에서 귀가하던 길에 실종된 루이제는 다음날 낮 상수도 시설 인근 숲길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시신에서는 흉기로 인한 자상이 30개 넘게 발견됐다. 사망원인은 자상으로 인한 출혈이었다.
경찰은 친구들과 주변을 상대로 탐문을 벌이면서 모순된 진술을 파고든 결과, 루이제가 다니는 학교 같은 반 12세 A와 13세 B 등 동급생 2명의 자백을 받았다.
이들은 루이제를 인근 숲으로 유인한 뒤 비닐봉지로 질식시키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B가 루이제를 붙잡고, A가 흉기로 30차례 넘게 찔렀다.
두 동급생은 루이제를 공격한 뒤 자전거길 경사 아래로 밀었다. 이곳에서 루이제는 피를 흘리다 목숨을 잃었다.
루이제를 살해한 두 동급생은 14세 미만으로, 형사처벌이 불가능해 현재 청소년 복지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독일 경찰은 14세 미만인 두 가해자의 범행 동기나 과정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독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두 가해자는 루이제가 이들 한명의 몸매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뒷담화한 데 대해감정이 상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에 더해 A의 방을 수색한 결과, 형법상 14세 미만 미성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서류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살인을 계획한 셈이다.
이로부터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21일에는 독일 북부 하이데에서 14∼17세 여성 중고교생들이 13세 소녀의 얼굴에 담뱃재를 뿌리고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침을 뱉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보도돼 충격을 던져줬다.
소녀의 모친은 가해자들이 딸의 뺨에 담뱃재를 비벼끄고,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면서 관련 법령 강화를 통한 가해자들의 엄격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 집단괴롭힘 가해자들도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14세 미만이어서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형법상 미성년자들의 잔인한 범행이 잇따르자 독일에서는 형법상 미성년자 연령대를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에서 형법상 미성년은 1871년부터 12세 미만이었다가 1923년 14세 미만으로 상향 조정됐다. 당시에는 의무교육이 14세에 끝났기 때문이다. 이후 나치 정권은 1943년 형법상 미성년자 연령대를 12세 미만으로 다시 하향 조정했으나, 2차대전 이후인 1953년 독일 정부가 14세 미만으로 복구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행 제도로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14세 미만인 경우 청소년 복지 당국 관할이 되며,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처분이 부모의 양육권을 박탈하고, 청소년 보호시설에 보내지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이나 스위스에서는 10세부터 형법상 성년이며, 스코틀랜드나 그리스에서는 8세부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미국도 연방 기준으로는 10세부터 형법상 성년이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도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청소년 정신병원이나 청소년 보호시설 등의 기관에 보내지는 게 대부분이다.
독일 법정 정신의학 편람에 따르면 형법적으로 성숙한 연령대를 고정할 수 있을 만한 경험적인 근거는 없다. 형법상 성년을 정하는 기준은 성숙도나 관망 능력 등 학술적인 통찰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정치적 타협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다.
2021년 기준 독일에서 형법상 미성년자(14세 미만)가 살인을 저지른 건수는 19건에 달했다.
중학교 1학년 살해된 루이제의 반에는 루이제의 의자뿐 아니라 루이제를 살해한 두 동급생의 의자까지 모두 세 자리가 비었다.
yuls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