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나홀로 생환' 아기들의 비극…너무 어려 신원확인 난항
일부 아동은 이름조차 알 도리 없어…DNA가 거의 유일한 단서
"구조현장 극도 혼란에 신원 밝힐 단서 거의 없어"
일부는 친지와 극적 상봉…나머지는 당국 보호·입양 수순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5만 1천여 명의 사망자를 낸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에서 상당수 어린이가 부모나 형제를 모두 잃고 홀로 구조된 탓에 또 다른 인도적인 재난에 처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국은 DNA와 사진, 지문, 신체적인 특징 등을 근거로 이들에게 생존해 있는 친지를 찾아주려 하고 있으나 구조된 일부 아동들은 너무 어려 이름조차 알 도리가 없는 탓에 신원 확인과 가족 상봉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와 시리아 정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부모와 친지가 모두 사망한 채 홀로 생존한 아동은 최소 1천915명이며, 이 가운데 78명은 구조된 지 3주가 넘도록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아동들을 치료·보호하고 있는 병원 의료진과 당국은 잔해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생존한 친지들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통상 열흘 이상 걸리는 DNA 확인 작업을 사흘로 앞당겨 DNA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다른 자료와 대조 작업을 벌이는가 하면, 아동들이 구조된 장소와 신체 특징 등 온갖 실마리를 동원해 친지들을 수소문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까지 혈혈단신으로 구조된 아동 1천600명이 친지를 찾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기가 살아 있다는 통보를 뒤늦게 받은 뒤 자녀를 보호하고 있는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와 극적으로 상봉하는 기쁨을 누리는 부모들도 종종 나오고 있다.
지난 주 터키 남부 시바스의 한 병원에서도 대지진 당시 4층 건물 붕괴 현장에서 홀로 구조된 생후 2개월 난 남자아기 우무트가 지진 발생 수주 만에 엄마 베디나 품에 안겼다.
대지진의 진앙에서 50㎞ 떨어진 아다나 시립병원에는 잃어버린 아기를 찾아 아동 병동을 헤매던 한 여성이 우연히 아기를 찾는 기적도 일어났다.
이 병원에서 가족 상봉을 조율하는 누르사흐 케스킨 씨는 이 여성이 자신의 아기를 알아본 뒤 "'여기 내 아기가 있어요!'라고 기쁨에 차 외쳤다"며 "이런 극적인 순간을 종종 목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아동들은 여전히 가족들을 찾지 못하고 있고, 찾을 수 있을 거란 기약도 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가령 아다나 시립 병원의 경우 지진 발생 첫 주에 이송된 아동 수백 명 가운데 250명가량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할 만큼 어린 아기들이라 신원 파악이 쉽지가 않은 실정이다.
지진 직후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구조 작업이 이뤄진 터라 이 아동들이 어디서 구조됐는지를 제외하면 아동의 신원을 특정할 변변한 단서마저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일부 아동들은 구조 직후 헬기 편으로 수백㎞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자원해 구조 활동을 펼친 치한 테추카르 씨는 "지진 직후 모두가 공황에 빠진 듯한 분위기였고, 아무런 질서가 없었다"며 "우리는 수많은 아기를 구조했지만, 많은 아기가 가족이 다 죽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난민 위기와 시리아에서 빈번히 이뤄지는 아동 인신매매 등도 아동들에게 가족을 찾아주려는 당국의 노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꼽힌다.
시리아에서는 10여 년에 걸친 내전으로 이미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터라 홀로 남은 아동들이 신원이 파악되더라도 친지들과 연락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2015년 네팔을 강타한 지진 직후 아동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린 것처럼 이번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2015년 네팔 지진 몇주 후 인신매매 위기에 처한 아동 245명이 현지 당국에 구조된 사례가 있다.
튀르키예 당국은 홀로 생존한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이들을 자원봉사자들과 연결해주고, 부모와 친지가 모두 사망한 아이들에 대해서는 입양 수순을 밟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일부 아동들이 벌써 새로운 가족들에게 인계되고 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지만 데리야 야니크 터키 가족부장관은 이런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지난달 6일 새벽과 오후 두차례에 걸쳐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 국경지대에서는 각각 규모 7.8과 7.5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5만1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20만채 가까운 건물이 붕괴·파손됐고 20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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