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1년] ⑤ 800만 피란민 유럽 곳곳으로…"2차 대전 후 최대"
우크라 인구 3분의 1 실향민 신세…전쟁 장기화 속 수용국 지원 '포화상태'
타국 난민과 차별 논란 등 마찰도…유엔, 7조원대 모금 추진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한 나라 인구 3분의 1 이상이 실향민이 된 사건', '세계 2차 대전 후 가장 큰 규모의 피란민이 급격히 발생한 전쟁'
유엔난민기구(UNHCR)가 최근 성명에서 발발 1년을 앞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리키며 사용한 표현이다.
참혹한 전란을 피하기 위해 집과 삶의 터전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규모는 근래 들어 단일 지역 내 난민 발생 사례 가운데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 유럽으로 간 난민 800만명…자국 내 실향민도 650만명 달해
20일 UNHCR에 따르면 작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다른 유럽 국가로 들어온 우크라이나 난민은 800만여명에 이른다.
개전 후 최근까지 우크라이나인 1천800만여명이 전란을 피해 나라를 떠났다가 990만여명이 다시 조국 땅으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은 우크라이나인 150만여명을 받아들인 폴란드다.
이어 독일(100만여명)과 체코(48만6천여명), 이탈리아(16만9천여명), 스페인(16만1천여명), 영국(15만8천여명), 불가리아(15만2천여명), 프랑스(11만8천여명), 루마니아(11만3천여명) 등의 순이다.
이 순위 집계에는 200만명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주로 개전 초기에 유입됐다는 러시아는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에 머무는 800만여명 가운데 각국의 난민 보호 프로그램에 정식 등록된 인원은 484만여명이다. 300만명 넘는 인원은 아직 난민 수용국의 제도적 보호 밖에 있거나 보호를 신청한 채 대기 중인 셈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떠난 전체 난민 인구의 86%는 여성과 어린이로, 제때 보호를 받지 못하면 범죄나 위협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UNHCR은 지적했다.
국경을 넘지 않았지만, 고향을 떠난 우크라이나 실향민 규모도 650만여명에 달한다. 다른 유럽 국가에 머무는 800만명까지 합치면 1천450만여명이 집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됐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기 직전인 작년 1월 우크라이나의 인구가 4천330만명이었던 점에 비춰 1년 사이 인구의 3분의 1이 실향민이 됐다는 UNHCR의 평가는 통계가 그대로 보여준다.
◇ 따뜻하게 맞은 이웃 국가들…전쟁 장기화 속 여력 부족·갈등 불거져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이웃 국가들은 따뜻하게 맞았다.
국가별 정책에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각국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거주 허가를 주고 주거와 교육, 복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난민을 직접 수용할 거주 시설을 곳곳에 마련해 운영하는 한편 자발적으로 난민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보호하는 이들에게 재정 보조를 해 주는 등의 방식으로 거주 문제를 해결했다. 난민들에게 자국 노동시장에 접근해 생계 수단을 찾도록 허락하는 나라들도 많았다.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며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은 폴란드는 18개월간 난민에게 기본적 복지 서비스와 노동 기회를 부여하고, 난민을 집에 데려온 국민에게는 하루 40즈워티(약 1만1천600 원)를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두 번째로 많은 우크라이나인을 수용한 독일은 기초생활수급 제도로 보장하는 수준의 생활을 난민들에게 보장하고, 그들이 독일 노동시장에 편입돼 적절한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는 난민 수용국들의 부담을 가중했다.
유입 규모가 늘어날수록 수용 시설 부족 현상이 심화했다. 난민 숙소로 제공하던 공공주택과 숙박시설 등은 이미 가득 찼고 무역박람회장이나 옛 공항 부지 등에 새로 조성한 대형 수용 시설도 여력이 점차 고갈됐다.
개전 초 난민 수용 업무가 지방정부나 시민단체, 일반 시민의 손에 맡겨져 있다 보니 난민에 대한 교육과 보육, 돌봄 서비스, 사회 통합 등 중앙 정부에서 결정하는 정책이 일관성 있게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더구나 난민 정책에 사용하는 예산이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 쏠림에 따라 다른 국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종종 마찰을 빚었다.
작년 11∼12월 아프리카 난민 등을 태우고 지중해에서 입항을 요청하는 국제 구호단체의 선박 처리 문제를 놓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이 서로 수용하기 어렵다며 갈등을 벌인 것도 유럽 각국이 난민을 수용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난민과 다른 국가 출신 난민들을 차별한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아프리카나 중동권 국가 출신자들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유럽 국가들과 종교적·문화적 유사성이 강하고 교육 수준 및 기술 숙련도가 높기 때문에 난민 수용국들의 선호 경향이 드러나는데, 이는 제도적 인종주의가 아니냐는 것이다.
프란체스코 로카 국제적십자·적신월연맹(IFRC) 회장은 작년 6월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 난민 수백만 명을 받아들이는 동안 아프리카 난민은 겨우 수천 명 정도만 수용한 것에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 유엔, 실향민 지원 7조원대 모금 추진…여력 부족 수용국 등 지원
유엔과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은 집을 떠난 우크라이나인들이 체류지 생활에 필요한 현금과 물품 등을 최대한 지원함으로써 난민 수용국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난민 수용 규모가 해당국의 재정 형편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원 필요성은 더 크다는 게 유엔의 판단이다. 몰도바의 경우, 유럽 최빈국으로 꼽히지만, 우크라이나 인접국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1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머물고 있다.
UNHCR은 최근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실향민 지원에 필요한 56억 달러(7조2천900억여원)를 모금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39억 달러(5조817억여원)는 우크라이나 내 실향민들을, 17억 달러(2조2천151억여원)는 유럽 각국의 난민들을 돕기 위해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미국과 독일은 5억 달러(6천515억여원)가 넘는 금액을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기부했다고 UNHCR은 전했다.
UNHCR의 성명에서 필리포 그란디 최고대표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받아준 수용국의 환대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며 세계 각국의 기부 동참을 호소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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