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1년] ⑨ "결국 한국식 분단 모델로 전쟁 끝날듯…몇년 더 간다"
이탈리아 국제문제 최고 전문가 넬리 페로치 IAI 소장 인터뷰
"어느쪽도 완전한 승리 불가…우크라 이미 서방의 일원, 러 잃는게 더 많아"
"한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용적 '균형외교' 펼쳐야"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IAI)의 페르디난도 넬리 페로치(76) 소장은 러시아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한국식 분단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전망했다.
넬리 페로치 소장은 최근 로마에 있는 IAI 본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유럽의 많은 전문가가 가장 유력한 종전 방안으로 한국식 시나리오를 언급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식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한국의 38도선과 같은 군사분계선을 그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분할 통치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 누구도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종전 방안이라고 넬리 페로치 소장은 설명했다.
IAI는 이탈리아 정치 안보 분야 최대 싱크탱크로서 우리나라 국립외교원의 교류 기관이다.
넬리 페로치 소장은 주EU대사, 이탈리아 외교부 유럽연합 총국장을 지낸 외교관 출신으로 2013년 7월부터 IAI 소장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국제문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우리나라 외교부의 '전략적 주요 인사 초청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11월 방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전쟁이 해를 넘겨 장기화하고 있다. 이번 전쟁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으로 전망하는가.
▲ 3가지 이유로 전망하기 어렵다. 첫 번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재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푸틴은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고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부를 세우겠다는 개전 초기 목표가 어긋난 뒤 여러 차례 생각을 바꿨다. 현재 푸틴이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지원이 지금처럼 지속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장기화하는 전쟁에 피로감이 커지고 있고,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런 경향이 더 심화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우크라이나의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년 전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 반환 등 영토의 완전한 회복을 평화협상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가 받아들일 리 없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서방은 평화 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무력 대결의 당사자이기에 서방이 평화 협상 조건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저마다 셈법이 달라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하기가 대단히 복잡해 보인다.
▲ 그렇다. 이번 전쟁은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분명한 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 누구도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전문가가 가장 유력한 종전 방안으로 한국식 시나리오를 언급하고 있다. 나 역시 한국식 분단 방식으로 이번 전쟁이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 국민처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도 비극적인 결말이 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터진 한국전쟁은 1953년 7월에야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한국전쟁처럼 몇 년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지만, 사상자가 줄어들고 민간인 피해가 적어지고 건물과 도시가 덜 파괴되는 식으로 진행되길 바랄 뿐이다.
-- 젤렌스키 대통령이 과연 이 종전 방안을 수용할까. 그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를 종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포기할 리 없다. 우크라이나가 이를 되찾기에는 힘의 불균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결국에는 한계를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방은 러시아 영토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공격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를 공격할 수 없는 매우 비대칭적인 상황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투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서방은 러시아에 대립을 고조시킬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이를 거부할 것이다. 전쟁 초기 젤렌스키가 서방에 자국 영공을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서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러시아가 전쟁 1주년을 맞아 대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밖에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있다면.
▲ 푸틴 대통령은 '특별 군사작전'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자국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대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푸틴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어 전망하긴 대단히 어렵지만, 대공세에 나선다고 해도 추가적인 영토 확장보다는 최근 격전지인 바흐무트를 완전히 장악하고, 더 나아가 헤르손을 재점령하는 것으로 목표를 한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추가적인 변수를 꼽는다면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EU와 나토는 머지않은 시기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입 심사 절차에 착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어디까지 획정할지가 논의된다. 우크라이나의 남은 영토는 가능하겠지만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동부 돈바스까지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은 EU·나토 가입 문턱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이다. 젤렌스키는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결국에는 한국식 분단 모델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 한국식 분단 모델로 전쟁이 끝난다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에는 승리한 전쟁일까.
▲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서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푸틴에겐 아마도 최악의 결과일 것이다.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는 이제 정상화되기에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했다. 1975년 헬싱키 협정과 같이 러시아를 포괄하는 범유럽 안보 협의체 구성은 이제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유럽은 신냉전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유럽)는 이미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완전한 분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이번 전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한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 한국보다는 덜 하지만 유럽도 미국으로부터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유럽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어려운 길이지만 중국의 안보 위협을 견제하면서도 경제적 실리는 잃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는 없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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