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챗GPT가 쓴 추리소설을 책으로 출판하면 저작권법 위반일까?
저작권법, '인간의 사상·감정' 다룬 것만 저작물로 봐…인간 아닌 AI는 저작권 인정 안돼
앞으로 AI 저작권 인정 논쟁 거세질 듯…인정해도 AI 자체·AI 개발자 중 어디에 줄지 논란
교육현장 표절 문제, 발등의 불…AI 저작물 인용 때 표절의 범위·기준 시급히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이아미 인턴기자 =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사람이 쓴 글과 구분하기 힘들 만큼 자연스러운 문서 작성 능력을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AI가 쓴 글은 문맥이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해 사람, 특히 성인이 쓴 글과 구분이 대체로 쉬웠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챗GPT의 역량은 AI가 작성한 글과 사람이 쓴 글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식·정보 검색이나 보고서 작성에 새 지평이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이처럼 로봇의 글과 사람의 글을 분간하기 힘든 시대를 맞아 새 규범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던지고 있다.
이런 과제 중 하나는 저작물의 독창성·고유성을 둘러싼 저작권과 표절 문제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문제일 것이다. 챗GPT에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을 써달라고 한 뒤 그 결과물을 자기 창작물인 양 발표한다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까?
국내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은 다른 사람의 생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소설, 시, 논문, 강연, 사진, 비디오 등을 원작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베끼거나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려면 우선 챗GPT가 저작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저작권법상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인데, 전 세계적으로 저작자는 오직 자연인(自然人)만 인정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도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지난해 2월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AI가 독자적으로 그린 미술 작품 '파라다이스로 가는 입구'의 저작물 인정 소송에서 '인간'의 창작물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작물로 등록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로선 챗GPT가 쓴 추리소설을 그대로 책으로 낸다고 해도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챗GPT가 만든 창작물은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어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린의 전응준 변호사는 논리적으로 보면 저작자가 있어야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데 AI는 저작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를 따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앞으로 더 진화하면서 인간이 만든 것과 비슷한, 혹은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창작물을 쏟아낸다면 어떨까? AI가 '타이태닉'이나 '슬램덩크'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셜록 홈스보다 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쓸 때도 저작권 없이 누구나 이런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게 될까?
이런 단계가 되면 AI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인정 문제는 첨예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상조 교수는 논문 '인공지능 시대의 저작권법 과제'(2018)에서 AI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귀속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AI를 워드프로세서, 디지털카메라와 비슷한 창작의 '도구'로 보는 관점과 AI가 직접 독자적 창작을 한다고 보는 관점이 그것이다.
AI를 도구로 본다면 인간이 AI를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이런 논리에선 AI에 선택이나 지시, 이미지를 입력한 인간이 저작자로 인정되고 저작권을 취득한다.
그러나 챗GPT의 경우 작성된 결과물의 질적 완성도를 볼 때 이를 도구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저작권 전문가들은 밝혔다.
정상조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상세한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완성까지) 80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이 경우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챗GPT는 인간이 창작적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물만 보면 (챗GPT의 글이) 독자적인 창작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응준 변호사도 챗GPT는 AI를 단순히 창작의 도구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간 사례라고 평가했다.
챗GPT가 독자적으로 창작을 하는 수준의 AI이라면 이때 저작권은 누가 가져야 할까. 원론적으로 보면 AI 그 자체가 돼야겠지만 AI가 아직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AI 알고리즘을 개발한 프로그래머, 또는 데이터를 통해 AI를 학습시킨 사람이 저작권자가 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인간 중심의 저작물 정의 규정을 개정해 AI 자체에 저작권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권 침해에 따른 형사책임도 규정하고 있는데 AI가 저작권을 가지려면 로봇이 형사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민·형사상 법 체계를 뜯어고치는 것은 물론 AI의 법적 신분이나 권한을 새로 정립하는 큰 담론이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안의 방대성·복잡성 때문에 AI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하더라도 당장은 AI에만 적용되는 특별법 형태의 규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향후 AI의 저작권법상 지위에 대해 "인공지능에 의한 창작물은 저작권 특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특칙이 나오기 전까지는 AI 챗봇 개발업자가 이를 공개할 때 저작권 귀속에 대한 약관을 정해서, 그 계약에 동의하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행법상으로는 차선책"이라고 설명했다.
전 변호사도 "AI 저작물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인 입법례가 없는 상태"라면서 "인간 저작물만 보호하는 기존 저작권법은 그대로 두고, AI를 비롯해 기계에 대한 것만 따로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저작권은 존속기간이 사후 70년으로 매우 긴데,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보호기간을 3년이나 5년 정도로 짧게 지정해도 괜찮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저작권 문제가 이처럼 천천히 풀어나가야 할 중장기 과제라면, 남의 창작물·저작물을 몰래 가져다 쓰는 '표절'은 당장 풀어야 할 발등의 불이다.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는 챗GPT를 일컬어 '첨단기술 표절 시스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미 전 세계 교육 현장에선 챗GPT를 이용한 표절 문제가 초미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12월 말 미 교사들이 챗GPT를 악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들 때문에 큰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학생들이 에세이(리포트) 형태의 서술형 시험에 챗GPT가 작성한 답변을 그대로 제출한 것이다.
또 미국 스탠퍼드대 학생 약 4천500명을 상대로 지난달 9∼15일 실시한 익명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17%가 지난해 가을학기 시험 때 챗GPT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17%의 응답자 가운데 약 60%는 브레인스토밍, 개요 작성 등에 활용했다고 답했지만, 7.3%는 일부를 수정해 그대로 냈고, 5.5%는 수정조차 없이 제출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최근 한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이 챗GPT를 이용해 영문 에세이 과제를 작성했다가 적발돼 모두 '0점'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현장에서 이미 챗GPT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표절은 법의 영역에 들지 않지만 학자·연구자나 소설가, 시인, 화가, 작곡가 등이 벌인 창작활동의 독창성·고유성에 대한 사회적·윤리적 평판에 치명상을 입히는 행위다. 통상 부정행위로 불리는 학생들의 저작물 무단 인용도 표절에 해당한다.
저작권 침해 문제가 법적 권리에 관한 문제인 반면 표절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은 물론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 헌법·법률 조항, 법원의 판결, 언론 보도 등은 물론 아이디어·단문 같은 비(非)저작물, 자신의 과거 저작물(자기표절)을 출처 표기 없이 가져다 쓴 경우까지 포괄한다.
저작권이 없는 저작물을 무단으로 인용했다면 저작권법 위반은 아니지만 표절이기는 한 것이다.
앞서 언급된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 이미 학생들은 챗GPT를 이용해 과제물을 내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디서부터 표절로 볼지, 어디까지 용인할지에 대한 기준은 전무한 상황이다.
교육기관은 표절을 적발할 경우 내규에 따라 징계 같은 절차를 밟거나 성적상 불이익을 줄 수 있지만 챗GPT는 기존에 그어져 있던 표절의 경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작권 침해는 피해자가 저작자뿐이지만, 표절은 저작자는 물론 동료나 선생, 독자 등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면서도 챗GPT를 이용했을 때 어디까지를 표절로 간주할 수 있을지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예를 들어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는데 포털 검색을 하듯 챗GPT를 사용했고, 그걸 충분히 소화한 후에 쓴다면 챗GPT를 도구로 활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단순히 챗GPT의 결과물을 베낀다면 컨트롤타워가 인간이 아닌 챗GPT에 있는 것이고, 이는 비윤리적인 표절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AI에 의한 표절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어디부터를 질적인 변화로 볼 것인지 논의해야 할 때"라면서 윤리 기준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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