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총선 2차 투표율 11.3%…대통령 독선에 유권자 외면
개헌으로 '힘 빠진' 의회에 대한 무관심도 작용한 듯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아랍의 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인 튀니지 총선 1차 투표에 이어 2차 투표에서도 유권자들의 대규모 투표 거부가 이어졌다.
튀니지 선거관리위원회는 29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 2차 투표의 투표율이 11.3%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785만여 명의 유권자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88만7천638명이었다.
지난해 12월에 치러진 1차 투표의 투표율은 11.2%였다.
이날 2차 투표는 161석의 전체 의석 중 1차 투표에서 결정된 31석을 제외한 130석의 주인을 뽑기 위해 진행됐다.
그러나 전국 4천여 개 투표소는 투표 개시부터 마감까지 한산했다. 수도 튀니스의 한 투표소에서는 20분간 단 한 명의 유권자도 목격되지 않은 적도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대통령 퇴진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돼 군사법원에서 대통령 모욕죄로 기소된 야권 활동가 차이마 이사는 이번 선거를 '유령 선거'로 규정했다.
의회를 해산한 데 이어 대통령에 막강한 권력을 집중시킨 개헌까지 강행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과 함께, 개헌으로 힘이 빠진 의회에 대한 무관심의 표출로 풀이된다.
야당인 노동·성취당의 압델라티프 메키 대표는 "사이에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헌법을 고쳤을 때, 이미 그는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의회를 원했다"며 "의회가 구성되더라도 정부에 어떠한 영향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의원들이 국민에게 내놓은 공약을 실현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혼란 속에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경제난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반인들도 사이에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수도 튀니스 시내에서 쇼핑하던 여성 하스나씨는 로이터 통신에 "선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우유와 설탕 그리고 식용유다"라고 말했다.
튀니지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쓴 '아랍의 봄' 봉기의 발원지로 중동에서 드물게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과 정치적 갈등 속에 국민 불만이 쌓여왔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닥치면서 민생고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2019년 10월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2021년 7월부터 이른바 '명령 통치'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정치권과 공직사회의 부패를 비판해온 시민들은 사이에드 대통령의 행보에 지지를 보냈지만, 반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까지 성사시켰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 임명권,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은 물론 군 통수권까지 갖게 됐고, 연임 이후에도 '임박한 위험'을 이유로 임기를 임의 연장할 수도 있게 됐다.
당시 사이에드 대통령이 주도한 개헌은 튀니지를 과거 독재 정권 시절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개헌안은 투표 참여자 94.6%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투표율은 30.5%에 그치면서 대통령 지지자들만 참여한 반쪽 투표라는 평가를 받았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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