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긴우크라전 가다] 키이우 시민들의 '중꺾마'…"우리는 100% 승리한다"
독립광장 등 도심 '북적', 전쟁 속에서도 '평온한 휴일'…전사자 추모하고 승리 기원
"지금 당장 힘들다고 협상 바라는 사람 아무도 없다…국가가 부르면 달려갈 것"
내달 24일이면 러시아 침공 1년…"우크라이나 포에버" 희망 버리지 않는 사람들
(키이우[우크라이나]=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100% 확실하다. 우리는 승리한다"
러시아와 전쟁이 1년이 다 돼가는 지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은 누구도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전국의 전력시설이 파괴돼 수시로 정전이 발생하고, 공습경보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울리는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의 마음은 전혀 꺾이지 않았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당시 유행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문구가 가장 어울리는 상황이 있다면 이 곳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낮 우크라이나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광장과 주변 거리는 주말이자 정교회 성탄절을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함께 보내려는 이들로 붐볐다.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내달 24일 발발 1년을 앞두고 이날로 318일째로 접어든 상태였다.
키이우 중심가 흐레샤티크 거리에 있는 독립광장은 2014년 2월 친러시아 정부를 무너뜨린 유로마이단혁명 당시 3개월에 걸친 시위의 중심지로서 우크라이나 역사에 각인된 곳이다.
전쟁 6개월 만이자 독립기념일인 지난해 8월 2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곳을 찾아 승리를 다짐하기도 했다.
이 곳 광장을 가로지르는 도로 옆 인도에는 이번 전쟁에서 숨진 이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전사자들의 이름을 적은 소형 우크라이나 국기가 빼곡히 이 곳을 채우고 있었고, 뒤편에는 희생자 숫자를 업데이트하는 표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국기였지만 일부 미국과 캐나다, 조지아 등 국기도 눈에 띄었다.
인도 쪽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조화가 있었고, 몇몇 시민들은 길을 가다 멈춰서 묵념하며 전사자를 기렸다.
광장 한편에는 무장한 군인이 경계 근무를 하는 등 긴장감도 느껴졌지만, 시민들은 독립기념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다.
군인 바딤 씨와 부인 발레리아 씨는 손을 꼭 잡고 웃는 얼굴로 광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출장 중 잠시 짬이 나 부인을 만났다는 바딤 씨는 "작년 성탄절은 군대에서 보냈지만, 이번에는 아내를 만날 수 있어서 더욱 기쁘다"고 했다.
발레리아 씨는 "전쟁 초만 해도 남편 걱정이 많이 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하는 등 부부의 얼굴에서 그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발레리아 씨는 "원래 살던 곳이 하르키우인데 전쟁 이후 키이우로 왔다"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하르키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바딤 씨는 "휴전이나 평화협상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100% 확실하다. 우리는 승리한다"고 자신했다.
광장에서 언덕 방향으로 올라가자 키이우의 성탄절 명소로서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과 성 소피아 대성당을 잇는 거리가 나왔다. 이 곳은 독립광장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성 미하일 황금 돔 앞 광장에는 전쟁 중 파괴한 러시아 전차와 차량을 전시해두고 있었는데, 거리의 악사가 탱크 위에 올라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악사들은 연주가 끝나자 "슬라바 우크라이니(우크라이나에 영광을)!"라고 외쳤고, 시민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어린이들은 탱크 포신에 시소처럼 걸터앉아 놀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패딩을 입힌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시민들도 있었고, 세계 각국 취재진도 키이우의 주말 풍경을 앵글에 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부인, 어린 아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야로슬라프 씨는 "우리는 오늘 여기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도 군인들은 추위 속에서 떨고 있을 것"이라며 "이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힘들다고 협상을 바라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며 "이번 전쟁은 승리해야만 한다. 국가가 부르면 당장 달려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한 시민은 인터뷰 요청에 영어를 못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 포에버!"라고 외쳤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응원하는 덕담에 환한 표정으로 "빅토리, 스파씨바(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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