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점령지서 성폭행 무기화…4세 여아도 피해"
점령 2∼3일 지나면 지휘관 묵인하 성범죄…전 지역서 사례
곳곳 구금시설선 성고문 자행…생존자들 공포·자살충동 시달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를 '해방'하겠다며 국경을 넘은 러시아군 병사들이 점령지 주민들을 상대로 조직적 성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쫓겨난 지역에서 어김없이 성폭행 피해 사례가 확인되면서다. 불순분자를 걸러내겠다며 설치한 곳곳의 구금시설에선 성고문까지 자행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검찰의 러시아군 성범죄 조사 담당자인 이리나 디덴코는 이미 154건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가 정식으로 개시됐다며 "실제 피해사례는 훨씬,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러시아군에 점령됐던 키이우주(州)의 한 마을의 경우 여성 주민 9명 중 한 명꼴로 성폭력을 경험했다면서 수백 명이 성폭력과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작년 3월 초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본 피해자 중 한 명인 빅토리아(42)는 "아직도 공포가 남아 있다. 간혹 정전되면 난 그들이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고 토로했다.
당시 빅토리아와 함께 성폭행을 당한 이웃집 여성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버렸다. 러시아군이 자신을 성폭행하려 남편을 살해했고 몇 주 뒤에는 15살 아들마저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성범죄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주민들의 불신 때문에 실태 파악과 구호 작업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위민포위민인터내셔널(WFWI)과 안드레예프 재단 등 구호단체들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별개로 이동식 산부인과 진료와 상담을 벌이고 있으며, 이미 800명이 넘는 피해자가 이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드레예프 재단 측은 상담을 받은 피해자 중 22명은 18세 미만 미성년자였다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한 소녀는 피부를 잘라내고 싶고, 남자가 풍기는 냄새를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피해자 다수는 더는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키이우와 헤르니히우, 하르키우, 도네츠크, 헤르손 등 러시아군에 점령됐던 거의 전 지역에서 이런 범죄가 저질러졌다면서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병사들의 민간인 상대 성범죄를 묵인하거나 부추긴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목격자들은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민간인 여성이 있는 곳 근처에서 휴식을 지시하고, 성폭행 등 범죄행위와 관련한 병사들의 발언을 못 들은 척 하는 등 행태를 보였다고 진술했다.
디덴코는 러시아군의 성범죄 발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면서 "지상군 도달로부터 이틀 혹은 사흘째부터 성폭행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 점령지 곳곳에 차려진 구금시설에선 성적 학대와 위협이 주민들의 저항을 꺾기 위한 일종의 '무기'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작년 말 우크라이나군에 탈환된 남부 요충지 헤르손에서는 조직적 고문의 흔적이 있는 대형 구금시설 네 곳이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측이 제공한 구호물자를 몰래 주민들에게 나눠주다 붙들린 현지 여성 올하(26)는 이 중 한 시설에 14일간 갇힌 채 각종 폭력에 시달렸고, 심문관이 러시아군 병사 7명을 데리고 들어와 성적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성 신체의 중요 부위에 전류를 흘리는 고문을 당해 후유증을 겪는 사람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곳곳의 구금시설에서 유사한 방식의 고문이 이뤄졌고 러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점에 비춰볼 때 러시아 지도부의 명령으로 이런 만행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군이 점령지에서 인권을 유린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현지 조사를 진행한 유엔 인권이사회는 작년 10월 공식 보고서를 통해 국제인도법을 중대하게 어긴 다수의 전쟁범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러시아군이 성폭행을 저지른 사례가 확인된 것만 100건이 넘고, 심지어 4살 여아에게 유사성행위를 강요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