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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전쟁이 끝나길 기원하며 다시 우크라이나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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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전쟁이 끝나길 기원하며 다시 우크라이나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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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전쟁이 끝나길 기원하며 다시 우크라이나에 갑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난민 구호활동 벌이는 전석근·곽정숙 부부
"우크라 국내 상황 너무나 참혹…400㎞ 이동하는 동안 불빛 한번도 못봐"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사는 교민 전석근, 곽정숙(이상 64세) 씨 부부에게 2022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발레리노의 꿈을 꾸던 둘째 아들을 위해 27년 전 이주해 정착한 '제2의 고향'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이들 부부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30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편 전씨와 함께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곽씨는 "지난 2월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대피하라고 해서 가까운 터키로 갔다. 전쟁이 터지기 1주일 전이었다. 하지만 터키에 있으면서도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쟁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맞은 이들 부부는 터키에서 3주를 지내다가, 먼 친척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석 달을 보냈다.
하지만 전쟁통에 참혹한 일상을 보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지난 5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로 갔다.
이들 부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선교사 등과 함께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이 모여들던 폴란드 루블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전씨는 "버스터미널, 체육관, 학교 강당과 기숙사 등 모든 시설이 난민 쉼터였다. 폴란드 당국에서 식사 등 기본 서비스만 받는 난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나눠주고, 아이들에게는 피자 파티도 열어주고 놀이방도 마련해줬다.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을 채운 가방도 선물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7월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곽씨는 "전쟁 중인 키이우에 가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함께 있어 주자는 마음으로 갔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키이우에서 목격한 주민들의 상황은 폴란드 국경에서 만난 난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고 한다.
곽씨는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부엌은 물론 화장실도 없는 빈집을 찾아 기거하고 있었다. 그 상황이 너무 참혹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 부부는 그런 우크라이나 내 난민들을 돕기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맸다.
현지 비정부기구(NGO)의 협조를 받아 도네츠크, 하르키우, 헤르손 등 전쟁이 한창인 지역에서 온 피란민들이 몰려드는 지역 등을 돌며 구호품을 전달했다.
전씨는 "키이우 남쪽 타라슈차에서 만난 어린 소녀가 구호품 보따리에 넣어둔 익지도 않은 초록색 바나나를 2개나 꺼내 허겁지겁 먹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참혹한 전쟁 상황에도 힘을 모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곽씨는 "주민들은 재봉틀을 모아 군인들에게 줄 전투용 조끼와 위장막 등을 직접 만들고, 동네 합창단은 군수품을 만들 옷감을 사기 위해 공연도 했다. 민물고기를 잡아서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줄 통조림을 만드는 피란민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집중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기가 끊긴 암흑도 경험했다고 한다.
전씨는 "한국 기업이 지원한 이불과 생필품을 최전선에 전달하고 키이우로 돌아오는 길에는 400㎞ 구간에서 한 번도 불빛을 보지 못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11월까지 난민들과 함께해온 이들 부부는 전쟁통에 한국기업의 이집트 법인으로 일터를 옮긴 두 아들을 보기 위해 잠시 카이로를 방문했다.
새해엔 키이우로 돌아가 다시 구호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러시아군의 간헐적인 공습 등으로 위험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환경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씨는 "인류애 등 거창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우리와 함께 살았던 이웃들과 함께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키이우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설날을 앞두고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계획인 부부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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