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대표가 직접 본 우크라 참상…"민간인 삶 뿌리뽑혀"
개전 초 1개월 민간인 피해 보고서 나와…"사망자 441명, 러군이 고의살해 가능성"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민간인들의 삶은 뿌리가 뽑혔습니다.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찾아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투르크 최고대표는 나흘간의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는 7일 성명을 내고 "영하의 온도에서 4일간 우크라이나에 머물면서 전쟁이 이 나라 국민들에게 끼친 공포와 고통, 일상의 피해를 직접 봤다"고 했다.
투르크 최고대표는 이번 방문 기간에 수도 키이우 북쪽의 부차 지역과 동북부 하르키우주 이지움 등지를 찾았다. 모두 개전 초기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퇴각한 지역으로, 집단 매장지를 비롯해 수많은 민간인 학살 정황이 드러난 곳이다.
그는 포격에 무더진 건물 잔해 아래에 민간인 50명 이상이 숨졌던 이지움의 한 아파트 단지를 살펴보고는 "신발 한 짝, 버려진 피아노와 옷장, 장난감이 나뒹굴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지움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이웃들이 모두 숨졌다고 했습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릴 때 대피소로 이동하기조차 어려운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곤경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잇따른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습 속에 민간인들의 삶은 더욱 참혹해졌다고 투르크 최고대표는 말했다. 그는 "난방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삶은 처참했다"면서 "이들에게 길고 황량한 겨울이 올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인 789만여명이 나라를 떠났고, 650만여명은 국경을 넘지 않았지만 고향을 떠나야 했던 국내 실향민이며 인도적 지원이 당장 필요한 사람들의 수가 1천770만여명에 이른다고 투르크 최고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참상이 계속되는 것을 막으려면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따라 이 무의미한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면서 "나의 가장 간절한 바람은 우크라이나의 모든 사람이 평화와 권리를 누리는 것"이라면서 성명을 마쳤다.
이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개전 초기인 올해 2월25일부터 4월 초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키이우와 북부 도시 체르니히우, 수미 등 러시아군이 한때 점령했던 102개 도시 및 마을에서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민간인 사망 현황을 구체적으로 다룬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개전 초 102개 지역에서 남성 341명, 여성 72명, 소년 20명, 소녀 8명 등 441명이 러시아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달 기준으로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수가 8천300여명이라고 밝혔고, 유엔 역시 이달 초까지 파악된 민간인 사망자 수를 6천702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유엔 인권감시단이 직접 확인하고 각종 증거와 함께 문서화할 수 있는 개전 초 사망 사례만을 취합한 것이다.
보고서는 "많은 시신을 검증하면서 희생자들이 고의로 살해됐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개전 초기 러시아가 점령했던 부차 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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