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나라 몰타, 낙태 금지법 완화 움직임에 종교계 반발
벨라 대통령 거부권도 변수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가톨릭의 나라 몰타에서 낙태 금지법 개정을 놓고 종교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몰타의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와 요제프 갈레아 쿠르미, 안톤 테우마 주교가 2일(현지시간) 의원들에게 공개 서신을 보내 낙태 금지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새 법안이 발효되면 임신부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낙태 수술이 허용될 것"이라며 무분별한 낙태를 막기 위해 법안을 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인구의 98%가 가톨릭 신자인 몰타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법적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은 최대 징역 3년 형, 의사는 최대 4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집권 여당이 발의한 새 법안은 낙태를 금지하되 임신부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될 때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몰타인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톨릭 지도자들은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서 인간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반발했다.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조지 벨라 대통령도 새 법안에 반대하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최근에는 벨라 대통령이 가까운 지인들에게 법안이 수정되지 않을 경우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대통령실은 해당 보도를 부인했지만, 현지 언론들은 새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벨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탈리아 남쪽에 있는 지중해 소국 몰타는 낙태 수술을 전면 금지하는 국가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도 예외는 없다.
몰타 정부가 돌연 태도를 바꾼 데에는 미국 관광객 안드레아 프루덴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여름 몰타로 태교 여행을 떠났던 임신부 프루덴테는 여행 중 자궁 출혈을 겪었다.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고 임신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몰타의 낙태법상 태아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는 한 낙태를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프루덴테의 생명도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에 결국 스페인으로 긴급 이송됐다. 프루덴테 부부는 지난 9월 몰타 정부를 고소했다.
푸르덴테가 몰타에서 낙태를 동반한 시술을 받지 못해 위험천만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소식은 몰타는 물론 전 세계에서 논란이 됐고, 변화의 도화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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