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완화냐 강경대처냐…3연임 시진핑 '백지시위' 첫 시험대
톈안먼 시위 이후 33년만의 조직적 목소리…제로코로나 '중대기로'
민심 의식한듯 관영지 정밀방역 강조…사태 출발점 된 우루무치 봉쇄 완화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지난달 당 대회를 통해 강고한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보였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3기를 시작하자마자 엄중한 시험대에 올랐다.
시 주석이 받아든 시험지는 코로나19 관련 고강도 봉쇄 조치에 저항하는 이른바 '백지 시위'(항의 표시로 흰 종이를 펴드는 것)에 어떻게 대응할지다.
2020년 우한에서 전 세계 최초로 코로나19가 대규모 확산했을 때도 위기였지만 그때는 전적으로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었다면 이번엔 분노한 '민심'과 마주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 24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19명의 사상자를 낳은 아파트 화재가 발생한 뒤 진화 지연과 고강도 방역 조치가 관련 있다는 의혹이 확산하면서 베이징, 상하이, 우한, 청두, 난징, 광저우 등 대표적 대도시에서 수백∼수천 명 단위로 전개되고 있다.
규모 면에서는 아직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때의 상황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톈안먼 사태 이후 33년간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이번처럼 전국 여러 곳에서 조직화해서 나온 적이 없었기에 그 파장은 속단을 불허하는 형국이다.
톈안먼 사태 이후 출생한 20대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역사의 증인이 될 것 같다'는 말들까지 나온다고 한다.
상하이 시위에서 '시진핑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28일 시점에서 시위는 전면적 반정부 또는 반체제 운동이라기보다는 방역 정책에 대한 불만 표출 및 시정 요구에 가까워 보인다.
장기 봉쇄가 대표하는 중국의 고강도 방역 정책이 만 3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지친 시민들의 절망과 분노에 우루무치 화재가 도화선 역할을 한 상황이다.
진화 지연과 방역 정책은 무관하다고 정부는 누차 밝혔지만,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시위는 중국인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직접 경험한 봉쇄 상황에 비춰 자신이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감'과 '연대 의식'이 시위의 불을 댕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강도 방역을 유지하는 동안 정부가 전파력은 높되, 중증화율은 낮은 최신 변이의 특성을 포함한 코로나19 관련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지 않은 것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월드컵 관중을 본 중국인들의 '문화 충격'을 더 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시 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처음 민심의 조직적 저항에 봉착했다.
사태가 방역 관련 시위에 머물 것이냐, '민주화 시위'로 커질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시 주석 앞에는 크게 보면 강경 대응과 방역 정책 완화의 양쪽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역 완화는 이미 지난 10일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거쳐 11일 내놓은 20가지 이른바 '최적화 조치'를 통해 '일률적 봉쇄'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림으로써 일부 시도했다.
그러나 그 이후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다시 지역별로 고강도 방역으로 되돌아갔고, 그 와중에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
특히 대규모 중증환자 치료 시설 등이 채 완비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방역 완화가 의료 붕괴 사태로 연결될 경우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시진핑 지도부에 딜레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 대응은 상하이 시위대 중 체포한 이들에 대해 '본보기성'으로 강한 처벌을 하는 동시에 앞으로 벌어지는 시위를 원천 봉쇄하는 등의 방법이다.
그러나 지난달 당 대회를 통해 '인민영수'의 칭호를 일선에 확산시킨 시 주석 입장에서 경제 상황까지 여의치 않은 터에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택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방역의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완화와 본보기식 강경 대응을 병행하는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현재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는 이번 시위 사태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국영방송인 중앙TV(CCTV)는 28일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新聞聯播) 첫 뉴스로 몽골 대통령 국빈 방문 및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고 바이두 등 포털사이트들은 29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유인 우주선 선저우 15호 발사 소식을 메인 뉴스로 소개했다.
또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 확산에 대한 질문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이번 시위를 촉발한 우루무치 화재에 대해 "소셜미디어상에 일부 다른 속셈이 있는 세력이 이번 화재를 현지의 방역 정책과 연결 지었다"고 주장했다.
브리핑에서 시위와 관련한 질문들이 잇따라 나왔지만 외교부가 밤에 홈페이지에 올린 브리핑 질의응답록에는 이 내용이 다 빠졌다.
그러나 정부발 조용한 움직임들은 감지된다.
방역 당국인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각 지방 정부에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감독하기 위한 실무단을 파견했다고 글로벌타임스 등 관영매체들이 28일 전했다.
지방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취지인데, '묻지마식' 방역을 시정토록 하겠다는 신호를 국민들에게 보낸 것으로 읽힌다.
또 이번 사태의 진원지 격인 신장의 우루무치 시 당국은 대중교통을 앞으로 질서 있게 재개할 것이며, 저위험 지역의 필수 사업장에 대해 가동률 50% 정도로 가동을 재개토록 허용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그리고 인민일보,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들도 같은 날 '과학적이고 정밀한 방역'과 '효율적 방역'을 강조하는 글을 잇달아 실었다.
그와 더불어 일부 매체와 온라인 논객들 사이에서 PCR(유전자증폭) 검사 관련 기업과 당국 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어 민심을 달래기 위한 당국의 수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 발로 고강도 방역 중단을 요구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시 주석 지도부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7∼28일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의 중국대사관 근처에서는 현지 중국인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고, 28일 호주 멜버른에서는 현지 중국인 커뮤니티가 주도한 시위가 벌어졌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통한 감염자 최소화를 서구와의 체제 경쟁 소재로 부각해온 중국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의 '역풍'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관심사가 됐다.
그랜트 섑스 영국 산업부 장관은 이날 자국 방송에 출연해 중국 경찰이 시위를 취재하던 BBC 기자를 폭행한 것에 우려를 표명했고, 미국 백악관은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외 연대 시위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당신이 거론한 상황을 모른다"고 답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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