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안보 대전환] '반격능력' 보유…창·방패 모두 가진다
원거리 타격무기 확보 추진…미일동맹 역할 분담 조정될 듯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이 안보 정책의 큰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일본 안보의 기축은 미일 동맹이다. 전통적인 미일 동맹의 역할 구분은 자위대가 '방패', 미군이 '창'이다. 일본이 공격을 받으면 타격 능력을 가진 미군이 보복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 미군의 창에 의존해 방패 역할에 전념하는 구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창과 방패를 모두 보유하려는 것이다.
◇ "반격 능력 보유 억지력 위해 불가결"
일본 정부가 방위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9월 소집한 전문가 회의는 이달 22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반격 능력'의 보유와 증강은 억지력의 유지·향상을 위해 불가결하다"며 반격 능력 보유를 제언했다.
전문가 회의는 "인도·태평양의 '힘의 균형'이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주변국 등이 핵·미사일 능력을 양적·질적인 면에서 급속히 증강하고, 특히 (요격이 어려운) 변칙궤도 및 극초음속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며 반격 능력 보유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적의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원거리 타격 수단의 보유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 회의는 "국산 '스탠드오프'(적의 위협 범위 밖 원거리 타격) 미사일 개량과 외국산 미사일 구매로 향후 5년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조기에 충분한 미사일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 회의는 이 밖에도 ▲ 5년 내 방위력 근본적 강화를 위한 예산상 조치 ▲ 자위대에 상설통합사령부 설치 ▲ 민간 방위사업 육성 ▲ 방위 장비 수출 제한 완화 등을 제안했다.
전문가 회의에는 좌장인 사사에 겐이치로 전 외무성 사무차관을 비롯해 전 방위성 사무차관과 경제전문가 등 10명이 참여했다.
◇ 안보 불안 커지면서 '방위력 근본 강화' 대세로
전문가 회의의 제언은 집권 자민당이 올해 4월 27일 기시다 총리에게 제출한 '새로운 국가안전보장전략 등의 책정을 향한 제언'을 통해 반격 능력 보유를 제안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 자민당은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현재는 GDP의 1% 수준)을 염두에 두고 5년 이내에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에 필요한 예산 수준의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 6월 7일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결정한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 기본방침'에는 자민당의 이런 제언 내용이 반영됐다.
정부와 여당의 반격 능력 보유 및 방위비 대폭 증액 추진 과정에서 전문가 회의의 제언은 명분을 더해준 셈이다.
'평화주의'를 강조해온 연립 여당인 공명당도 당초 반격 능력 보유에 신중한 자세였지만, 지금은 용인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잦은 미사일 발사, 대만해협 긴장 고조 등으로 일본 내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반격 능력 보유를 포함한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는 대세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5일 열린 방위력 강화를 위한 자민·공명당 7차 실무 회의에서 탄도미사일이 대량으로 발사되는 '포화 공격'을 받으면 현재 일본의 미사일 방어체계로는 요격이 어려워 반격 능력이 필요하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 연말까지 안보문서 개정…중국 관련 기술 주목
일본 정부는 방위력 강화의 방향과 내용을 연말까지 개정하는 3대 안보 문서에 담을 예정이다.
3대 안보 문서는 외교·안보 기본 지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와 자위대 역할과 방위력 건설 방향이 담긴 '방위계획대강', 구체적인 방위 장비의 조달 방침 등을 정리한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이다.
국가안전보장전략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 안보 위험 관련 기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관련 기술에 관심이 쏠린다.
2013년 국가안전보장전략이 처음 마련됐을 당시 중국 관련 동향은 "우리나라(일본)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우려 사항"으로 기술됐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여당은 중국에 대해 일본과 아시아의 지역 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은 일본의 거의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중거리 미사일 1천250발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군사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장사정 미사일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자위대가 현재 보유한 지상 발사형 미사일 중 사거리가 가장 긴 '12식 지대함유도탄'의 사정거리는 200㎞ 이하다.
일본 방위성은 우선 사정거리가 1천250㎞ 이상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미국에서 도입하고, 자국산 '12식지대함유도탄'의 사거리를 1천㎞ 이상으로 개량해 2026년부터 배치할 방침이다.
◇ 사거리 3천㎞ 미사일 개발…동북아 군비경쟁 우려도
나아가 일본 정부는 사거리 2천∼3천㎞ 미사일 개발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단계로 사거리 1천㎞ 정도의 미사일(12식지대함유도탄 개량형 후보)을 일본 서남부 난세이 제도에, 2단계로 사거리 2천㎞ 이상 미사일(도서 방어용 고속 활공탄 포함)을 본토인 혼슈(本州)에, 3단계로 사거리 3천㎞ 정도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2030년대 중반께 홋카이도에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원거리 타격 수단 보유를 비롯한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미일 동맹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에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미군의 타격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공격을 미군과 분담하는 등 반격 능력 행사 때 미일이 공동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동북아시아 안보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역내 안보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주변국의 군비 증강을 자극해 동북아의 안보 불안을 오히려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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