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왕따에서 인싸로…사우디 왕세자 존재감 확인 무대
FIFA 회장과 개회식 동석…외신 "운명변화 단면" 해설
지정학 급변 속 '인권 유린자' 오명 벗고 국제무대 복귀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카타르 월드컵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존재감 변화가 새삼 주목을 받는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1일(현지시간) 개막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옆자리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중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 본선에서 중동 최고 실권자가 최고 귀빈 대접을 받은 것은 일찌감치 예견된 의전이었다.
그러나 수년간 무함마드 왕세자가 받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고려할 때 이를 극적인 변화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월드컵 본선이 지구촌의 거대 스포츠 축제이며 개막전 귀빈석이 국제사회 위상을 확인하는 단면으로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운명의 괄목할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막식 참석을 평가했다.
통신은 "글로벌 스포츠의 간판격인 대회에서 어떤 귀빈보다 두드러지는 좌석에 앉아 활짝 웃는 모양새가 국제무대 주빈석에 복귀한 사람 같았다"고 설명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제사회 위상이 따돌림 대상에서 누구나 만나길 원하는 핵심 인사로 최근 급변한 건 사실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권을 유린하는 대표적 권위주의자로 여겨졌다.
고질적 여성권 억압, 권력 쟁탈전 과정의 대규모 숙청, 인도주의 위기를 부른 예멘 내전 개입 등이 그의 명성을 더럽힌 요인이었다.
결정타는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 칼럼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써오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이었다.
카슈끄지는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영사관에 들렀다가 사우디 공작원들에게 살해됐다.
언론 탄압, 인간 존엄성 경시에 대한 비판 속에 잔혹한 살해와 시신 처리까지 대중에 전해져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의 연루설을 시종 부인했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에 맞서 무함마드 왕세자가 암살을 지시한 배후라는 정보를 공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무함마드 왕세자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동안 사우디가 개최하는 경제, 문화, 체육 행사 등을 보이콧하는 움직임도 속출했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에너지난,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지구촌 악재가 동시에 불거지자 입지가 변하기 시작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원유공급 확대, 물가상승 억제 등에 열쇠를 지닌 거대 산유국으로서 사우디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본인의 말을 뒤집고 올해 7월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원유 증산을 부탁했다.
유럽연합(EU)을 주도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같은 달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동했다.
서방국들이 국제적 따돌림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마련하자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제무대 활동은 왕성해졌다.
이달 이집트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존재감을 확대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17일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민사소송 면책권을 인정해 범죄자 인식을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백악관, 국무부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올해 9월 사우디 정부의 수반인 총리가 되면서 뒤따른 국제법상 관행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는 서방이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유화적 조치일 가능성을 주목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미국과 국제질서 주도권 경쟁을 하는 중국에서 최근 종신집권 발판을 마련한 시진핑 주석과도 곧 회동한다.
로이터 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카타르 월드컵 본선 첫 경기도 왕세자의 급격한 위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사우디는 리오넬 메시 등 글로벌 스타가 빼곡한 아르헨티나를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켜 걸프 맹주로서 오랜만에 역내 자존감을 크게 높였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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