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과격해지는 환경운동가들 "정부 무관심에 선택여지 없다"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명화에 음식물 뿌리기, 축구 경기 방해하기, 출근길 도로 점거하기, 공항 활주로 가로막기….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곳곳에서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을 촉구하는 환경단체의 움직임이 나날이 과격해지고 있다.
과도한 퍼포먼스는 오히려 반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가 나오지만, 당사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를 움직이려면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두 명의 젊은이가 수프를 던졌더니 갑자기 온 세상이 기후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던 바이죠."
지난달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 중인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를 끼얹은 애나 홀랜드의 말이다.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 소속인 홀랜드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프랑스 BFM 방송이 6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아직 스무 살인데 과학자들은 2040년이면 깨끗한 물이 바닥난다고 예측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법적인 처벌보다 정부의 무심함이 더 무섭다"며 "우리가 한 일은 여전히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축구 경기에 난입해 기후 변화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 했던 로이크(32)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그는 파리 생제르맹(PSG)과 올랭피크 마르세유(OM)가 맞붙고 있는 경기장에 뛰어 들어가 골문에 매달렸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프랑스 환경단체 '데르니에르 레노바시옹'에서 활동하는 그는 정부의 대응에 변화가 없으니 직접 그 심각성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축구가 프랑스인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로이크는 기후변화로 자신이 나고 자란 남프랑스 풍경이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설립한 국제환경단체 350닷오알지의 니콜라 아링거 부국장은 이를 두고 정부의 무관심 앞에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아링거 부국장은 라디오 프랑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몇 주 사이 발생한 일들은 "일반적인 환경운동과 다른 새로운 과격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개인적으로 몇몇 상황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공공의 장에서 사람들이 기후변화 위기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만든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두둔했다.
특히 "시민사회가 어떻게 정부를 압박해야 하는 가에 관한 논의가 이제야 시작됐다"며 "주류 언론이 시민사회의 전략과 전술을 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정부가 기후변화 위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인지했으니 정부가 행동하도록 밀어붙일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기후 변화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환경운동단체들이 세계적인 명화에 음식물을 뿌리거나, 풀을 붙이는 등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에서는 무분별한 항공기 사용을 규탄하며 활주로를 점거했고, 이탈리아 로마의 외곽순환도로에서는 출근길 차량 통행을 막는 일도 발생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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