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정권 잇단 탄생…정치지형 좌향좌, 제2의 핑크타이드
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 이어 남미 최대국 브라질까지
브라질, 中과의 접점 넓어질 듯…美, '중남미 뒷마당 지키기' 비상
(상파울루=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중남미에 일렁이는 거센 '좌파 물결'이 국토 면적 세계 5위, 인구 세계 7위, 경제규모 세계 12위 국가인 브라질을 쓰나미처럼 덮어 버렸다.
대륙 구분상 북미에 해당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남미에 가까운 멕시코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콜롬비아 국민들이 잇따라 좌파 정부를 택한 데 이어 변화를 열망하는 브라질 민심도 '좌향좌'를 선택했다.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에서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에게 승리를 거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당선인은 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2003∼2010년 8년 재임 시절 민간 기업과 글로벌 자본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경제성장을 도모하며 중남미의 거대 좌파 물결을 이끈 장본인이다.
1990년대 말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정부도 사회안전망 확대와 빈부격차 개선 등 분배 정책을 도입하면서 기존 우파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화했다.
정치학계와 언론에서는 당시 중남미 정치 구도를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복지와 사회 불평등 해소에만 무게 중심을 두는 전형적인 좌파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인 진보 정책에 두루 신경쓰는 중도 좌파 또는 좌파 성향 정부라는 의미가 담겼다. 다소 편향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좌파 상징색인 '붉은색'까지는 아니라는 취지다.
이후 다시 줄줄이 '파란색' 우파 정권이 득세했던 중남미 주민들이 다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북미' 멕시코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다.
멕시코에서 쏘아 올린 신호탄 이후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콜롬비아에서도 잇따라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특히 콜롬비아에선 역대 첫 좌파정권이 탄생하기도 했다.
공약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들 정부 모두 원주민 권리 옹호와 페미니즘 강화, 환경 보호 등을 골자로 한 정책을 펴고 있다.
중남미에서의 이 흐름은 이날 브라질 대선 결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파도라는 것이 증명됐다. '제2의 핑크 타이드'라고 명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써 인구 2억여명의 대국이자 국내총생산(GDP·2021년 2천150조원) 세계 12위로 한국(2천400조원)과 비슷한 규모인 중남미 '대장주' 브라질도 정치·외교·경제·사회 정책에서 큰 틀의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는 뜻이다.
중남미에서 좌파 정권의 득세로 주목받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중국'이다.
그간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통했다.
하지만 과거 핑크 타이드를 틈타 이념적인 동질성을 내세우며 중남미로의 진출을 본격화한 중국은 특히 브라질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양국 관계는 룰라 정부 시절이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회복에 신흥국가 역할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브릭스(BRICs) 등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브릭스는 2000년대 들어서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일컫는다.
브라질에서 지난해 중국 투자액이 8조원(60억 달러)에 달해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전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브라질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그 비중은 13.6% 정도에 달한다.
이는 브라질 우파 정권하에서의 교역 실태이기 때문에, 좌파의 길을 걷게 된 브라질과 중국 간 관계는 앞으로 더 돈독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중국을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상정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뒷마당'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더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walde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