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150조…채권시장엔 남은 '불씨' 여전
연말까지 증권사에 27조원 규모 유동화증권 만기도래
은행채·산금채 자금 '블랙홀'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레고랜드 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가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했지만 얼어붙은 채권시장에는 여전히 냉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 수년간 급격히 몸집을 불려온 부동산 PF가 국내 금융시장에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 채안펀드 가동에도 CP금리 되레 올라
25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자금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정부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 실제 가동됨에 따라 신용 경색 우려가 다소나마 완화되며 국고채 금리는 진정세를 보였다.
그러나 단기 자금시장의 바로미터인 91일물 CP 금리는 오히려 전일 대비 12bp (1bp=0.01%포인트)오른 4.37%로 또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아직 단기시장의 불안심리가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날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주말 정부의 유동성 공급 발표에도 신용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 금리의 차이·스프레드가 확대될수록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 높게 본다는 뜻)가 확대됐다"며 대책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채안펀드 매입 규모를 수천억원으로 예상했던 시장 기대와 달리 수백억원에 그친 점도 시장에 실망감을 더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채 금리가 안정되면 시차를 두고 다른 신용물로 넘어가는 구조"라며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150조원 부동산 PF대출 곳곳에 '지뢰'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금융시장의 화약고로 지목된 부동산 PF 시장은 최근 수년간 몸집을 불릴 대로 불린 상태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기준 112조원에 달한다. PF유동화증권 등을 합치면 150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부동산 호황기에 PF 비중을 크게 늘려온 제2금융권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크다.
제2금융권은 사업인허가 전 단계에서 시행된 뒤 추후 본 PF 대출을 통해 상환되는 '브릿지론'의 취급 비중이 큰데, 올해 하반기 이후 전 금융권에서 PF 실행을 중단하면서 브릿지론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달(지난 18일 기준)부터 연말까지 증권사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유동화증권(ABSTB, ABCP) 발행 잔액은 27조원에 달한다.
PF 유동화증권들이 팔리지 않을 경우 증권사는 직접 매입을 해야 한다.
이명준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아직은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으로 차환발행 물량이 어렵게 소화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시기가 더 길어진다면 차환 발행 중단에 의한 건설사, 증권사 신용위험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특히 현재 차환 발행되고 있는 PF 유동화증권의 만기가 1개월 내외로 단축되고 있는 현상은 위험을 더욱 가중시킨다"고 덧붙였다.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화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신전문금융회사의 PF 관련 고정이하여신 규모는 올 상반기 말 기준 2천289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보험사의 부동산 PF대출 부실채권비율 역시 6월 말 0.33%로 작년 말(0.07%)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 정부 대책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격"…통화당국에 쏠린 눈
전문가들은 냉각된 시장 심리가 풀리기 위해선 정부와 통화당국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시장에선 최대 20조원 규모의 채안펀드가 자금을 집행하더라도 신규 자금 공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채안펀드의 출자구조는 산업은행이 20%, 시중은행이 60%, 보험·증권사가 20%로 이뤄진다.
은행들은 건전성 규제 충족과 늘어난 기업대출을 충당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채안펀드에 자금 출자를 위해서도 은행채 발행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금조달 대부분은 채권(산금채) 발행에 의존하는 산업은행의 경우 사실상 채안펀드 출자액 대부분을 신규 산금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안펀드의 경우 사실상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격이라는 얘기가 틀린 말이 아니다"라며 "한은의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조용구 신영증권[001720] 연구원은 "이번 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대출 적격담보증권 확대와 공개시장운영 대상증권 확대가 예상되며 이는 시장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