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등판 수낵, 위기의 영국 경제 살릴 수 있을까(종합)
경기침체 전망에 '트러스 충격'까지 과제 산적…우크라 전쟁 대응도
브렉시트 투표 후 5번째 총리…보수당 재건·국가통합 발등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영국의 정치·경제 위기를 해결할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수낵 전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보수당 대표 선거에 단독 후보로 남아 당 대표 및 총리로 결정됐다.
이날 후보등록 마감을 앞두고 경쟁자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모두 불출마 선언을 했다.
수낵 총리 내정자는 리더십을 발휘해서 리즈 트러스 총리 시절 초래된 극심한 혼란상을 수습하면서 경기침체로 접어드는 영국 경제를 살려낼 중책을 맡게 됐다.
브렉시트 후 5번째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불안정한 국내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경기침체 전망에 물가·금리 급등…생계비 위기
영국은 기술적으로 경기침체냐 아니냐 갈림길에 서 있는 상태이다. 전망에 대해서도 어두운 수치들이 나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최근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정책 예측 가능성 약화와 영국 정부에 대한 시장 신뢰 훼손, 차입 비용 증가에 따른 부채상환 능력 악화 등을 사유로 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영국 경제성장률이 0.3%로 4월 전망치(1.2%)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정부 미니예산 발표 전에 산출된 수치였다.
9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0.1%에 달하고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하게 올려야 한다. 영국인들은 장바구니 물가와 에너지 요금 급등, 주택담보대출 이자 급증이 동시에 몰아닥친 탓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철도·우편·교육·의료 등 공공 부문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도 잇따르면서 공공 서비스 운영이 원활치 않은 상태다.
정부 차입은 9월에 200억파운드(32조7천억원)로 로이터 예상(171억파운드) 보다 훨씬 많았고 올해 4월 이후 차입금은 725억파운드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의 거의 두 배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정부 이자 지급액도 급증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올해 초부터 이런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트러스 총리의 정책 헛발질로 위기가 급가속 됐다. 그는 취임 직후 재정 전망 없이 50년 만에 최대 규모 감세안을 발표, 금융시장을 대혼란으로 몰아넣은 뒤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쓰고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당장 10월 31일에 예산안 발표 여부부터 결정돼야 한다. 영국 정부는 이때 재정 전망까지 내놓을 예정이었다. 예산안엔 영국인들이 증세와 지출 삭감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지, 부채는 얼마나 늘어날지가 나오게 된다.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과 경제정책을 뒤집으면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브렉시트 후 정치 불안정, 보수당 재건 임무…우크라이나발 에너지 위기 해결
브렉시트 결정 후 영국은 총리가 길어야 3년 버틸 정도로 정치환경이 불안정하다.
과거 마거릿 대처와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10년 이상 집권하며 정책을 안정감 있게 추진한 것과는 대조되는 상황이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 후만 5번째 총리를 맞는다.
특히 트러스 총리는 '영국 자산 투매'를 초래해 리더의 중요성을 절감케 했다.
이 때문에 보수당 안팎에서는 단일 후보를 내세워서 신속하게 정부를 구성하고 안정을 이루자는 요구가 많았다. 다시 내부 경선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당내 계파 간 힘겨루기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수당은 브렉시트를 거치면서 여러 갈래로 분열됐다.
수낵 내정자는 집권 1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보수당을 재건해서 2024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보수당은 존슨·트러스의 실책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해서 제1야당인 노동당에 뒤졌을 뿐 아니라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지지율이 올라갈 때까지는 야당의 조기 총선 압박도 버텨내야 한다.
존슨 전 총리를 지지하던 주요 인사들이 존슨 전 총리 불출마 결정 후 바로 수낵 측으로 옮겨온 점은 당 통합을 위해선 긍정적 신호다.
당 통합과 정책 추진동력 확보를 위해선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과 정치적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
보수당엔 여전히 강경 브렉시트주의자들이 진을 치고 있지만 일반 국민 사이에선 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브렉시트주의자들이 제시한 청사진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더 타임스에는 브렉시트와 관련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칼럼이 실렸다. 유럽연합(EU) 재가입이 아니라도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칼럼에선 브렉시트를 결정한 2016년 영국 경제 규모는 독일의 90%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70% 미만이고, 주요 7개국(G7)에 기업 투자가 늘었지만 영국은 정체됐다고 지적했다.
브렉시트는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을 자극하고 북아일랜드 정치 불안으로 이어졌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내년 10월 독립 재투표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영국 정치에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브렉시트의 일환인 북아일랜드 협약과 관련해 유럽연합(EU)과 갈등하는 사이 북아일랜드에선 정치 공백이 생겼다.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이 사상 처음으로 제1당으로 올라섰고 민주연합당(DUP)은 북아일랜드 협약이 전면 재검토되지 않으면 신페인당과 연정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조만간 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북아일랜드는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
북아일랜드 협약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이지만 EU 단일시장에 남아 EU 규제를 따르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건너가는 상품에는 통관 및 검역 절차가 적용된다. 그러나 막상 실행 후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영국은 협약을 재협상하자고 주장한 반면 EU는 국제적 약속을 파기할 순 없다고 받아쳤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여기에서 촉발된 안보·에너지 위기도 중대한 과제다. 영국에선 자칫 유럽에서 오는 가스 공급이 축소되면 순환 정전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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