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 경제정책 헛발질에 신뢰상실…브렉시트 투표 후 총리 5명
보수당 집권 12년만에 최대 위기…의원투표만으로 뽑힐 새 총리 지도력 의문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에서 총리가 불과 44일 만에 사임을 발표하는 유례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정치 혼란이 극심하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경제정책 헛발질로 정치 경제 불안을 초래하고선 역대 최단명 기록을 갖고 떠나게 됐다.
워낙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아직 여당 내 차기 구도가 명확지 않다. 야당에서는 아예 이참에 총선을 해서 유권자의 결정을 받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철의 여인' 꿈꾸던 트러스, 무모한 정책으로 위기 자초
트러스 총리는 취임한 지 불과 17일 만인 지난달 23일 급하게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추앙하던 트러스 총리는 당선 후 담대한 경제 성장 정책을 내놓겠다고 외쳤는데 결과적으로는 무모한 정책으로 영국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재정 전망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하고, 시장의 불안한 반응에도 '고'를 외치자 파운드화와 국채 등 영국 자산 투매(Sell UK)가 벌어졌다.
영국발 경제 위기 확산을 우려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례적으로 비판을 할 정도였다.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처처럼' 강하게 끌고 나가려 했던 것이 자충수가 됐다.
성장을 외치면서 부자들은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들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급등으로 힘들게 만든 총리를 향해 불만이 들끓었다.
트러스 총리는 부자 감세에 이어 법인세율 동결을 취소하고 최측근 정치 동지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내치면서 생존을 시도했다.
이어 제러미 헌트 신임 재무장관이 자신의 경제정책을 모두 뒤집는 망신스러운 상황도 견뎠다.
그러나 여당에서조차 민심 이반이 점점 심해졌고 "나는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외친지 24시간도 안돼서 물러났다.
◇브렉시트 투표 후 총리 5명 된다…보리스 존슨 전 총리 출마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투표 이후 정치 경제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차기 총리까지 6년여간 총리가 5명에 달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투표 후 물러났고 테리사 메이 전 총리도 브렉시트 파고를 넘지 못해 약 3년 만에 거의 등 떠밀려 나갔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2019년 총선 대승리 성과와 브렉시트 본격 개시 등에도 불구하고 '파티게이트' 등의 문제로 역시 약 3년 만에 그만뒀다.
대처 전 총리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등이 10년 이상 이끌었던 상황과는 대조된다.
존슨 전 총리 사임 후에도 차기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당은 분열돼있었다.
지금은 트러스 총리 사임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후보군의 준비도 덜 돼 있고 당 분위기는 더 혼란스럽다.
지금으로선 트러스 총리와 경합한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과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 케미 베디너크 국제통상부 장관 등이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워낙 마땅히 의견이 일치되는 인물이 없다 보니 존슨 전 총리 이름도 나온다.
존슨 전 총리는 약 6주 전 트러스 총리에게 자리를 넘길 때도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는 설이 분분했다.
지난주에 임명된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출마 의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 보수당 12년 최대 위기…정치 경제 혼란 어떻게 수습할까
보수당은 집권 1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노동당 등 야당들은 이참에 총선을 해서 유권자의 의견을 듣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노동당에 비해 지지율이 훨씬 낮은 보수당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없지만 압박이 심해지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보수당은 일단 다음 주 중에 원내 경선으로 차기 총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번처럼 당원 투표를 하면서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선거에선 수낵 전 장관이 원내 경선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전체 당원 투표에선 트러스 총리가 승리했다.
수낵 전 장관의 패배 이유가 듣기 좋지 않은 재정 건전성 얘기를 했기 때문인지, 인도계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수낵 전 장관이 '동화 같은 얘기'라고 비판한 공약을 내건 트러스 총리가 선택을 받았다.
영국은 이제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지출 삭감 없이, 감세를 통한 성장을 한다는 달콤한 이야기가 어떤 재앙 같은 상황을 초래했는지 다들 경험했다.
이제 차기 총리는 함께 고통을 견뎌내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극소수인 보수당 의원들만의 결정으로 뽑힌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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