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베를루스코니, 멜로니 직접 찾아가 갈등 봉합
내부 권력 다툼서 밀리자 상원의장 투표 거부·자필메모로 불만 표출
베를루스코니가 먼저 화해 손길 내밀어…"차기 정부 불안요소"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차기 총리가 유력한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와 3차례 총리를 역임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5) 전진이탈리아(FI) 대표의 갈등 관계가 표면적으로 봉합됐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대표는 17일 오후(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Fdl 중앙당사를 방문해 멜로니 대표와 1시간 반 가까이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양당은 회담 후 공동 성명을 내고 "Fdl와 전진이탈리아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정부 구성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우파 연합의 다른 세력과 함께 단합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두 당은 에너지 위기와 경기 침체 전망 등 이탈리아가 직면한 비상사태에 즉시 대처할 수 있는 강력하고, 결속력 있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정부를 최대한 빨리 구성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Fdl와 동맹(Lega), 전진이탈리아 등으로 결성된 우파 연합은 상원 200석 중 115석, 하원 400석 중 237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중 멜로니 대표가 이끄는 Fdl는 이번 총선에서 26%를 득표해 함께 선거 연합을 형성한 동맹(9%)과 전진이탈리아(8%)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주도권을 확보한 멜로니 대표가 내각 요직에서 전진이탈리아 측 인사들을 배제하자 전진이탈리아는 지난 13일 상원의장 선출 투표에 소속 의원 대부분이 불참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역효과만 낳고 말았다. 좌파 진영에서 예상치 못한 지지표가 나오며 Fdl가 내세운 이냐치오 라 루사가 첫 투표에서 상원의장에 무난히 당선된 것이다.
파워 게임은 실패했고, 지지율 8% 정당의 한계만을 노출한 전진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 대표의 자필 메모가 언론에 공개되며 또 한 번 곤욕을 치렀다.
공개된 메모에는 "조르자 멜로니, 그녀의 행동 1. 고압적 2. 지배적 3. 오만 4. 공격적", "바뀌려는 의지가 없다. 그녀는 잘 지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베를루스코니 대표가 멜로니 대표를 찾아가 법무장관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홧김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루스코니 대표가 사진기자들이 찍으라고 일부러 눈에 잘 띄게 메모를 노출했다는 분석도 있다.
해당 보도가 나간 뒤 멜로니 대표는 베를루스코니 대표를 향해 "내 특성과 관련해 작성한 리스트에 한가지 빠진 게 있다. 나는 협박에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둘의 갈등 관계는 한때 파국으로 치닫는 듯했으나 베를루스코니 대표 측에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베를루스코니 대표는 지난 16일 멜로니 대표와 통화한 뒤 17일 오후 Fdl 중앙당사를 직접 방문했다.
전 총리가 차기 총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현지 언론들은 권력의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둘의 긴장 관계가 일단 봉합되기는 했지만,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차기 정부의 불안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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