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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케냐북부호수 넘치는데 주변은 가뭄…"염소젖도 말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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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케냐북부호수 넘치는데 주변은 가뭄…"염소젖도 말라버렸다"
'호모에렉투스의 땅' 세계최대 사막호수 투르카나 지역…멀리서는 '옥빛', 가까이가면 흙탕물 범람
불어난 물에 조업 지장, 소금호수라 농업 이용도 못해…주변 지역은 "물이 부족하다" 극과 극
"기후변화는 피부색 상관없는 인류 공통 문제" "예측 불가능성이 특징"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투르카나 호수[케냐]=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아프리카 케냐 북서부에 있는 세계 최대 사막호수 투르카나는 최근 물이 불어났다. 하지만 정작 그 주변 일대는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어떻게 이런 기현상이 가능할까.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현장을 찾아가 직접 지역 전문가의 말을 듣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국가가뭄관리청(NDMA) 투르카나 카운티의 조세파트 로트웰 부국장은 "멀리 떨어진 북쪽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 이전과 달리 변칙적으로 폭우가 내려 투르카나 호수로 유입, 수위가 불어났다"고 말했다. 투르카나 호수 유입량의 90%를 차지하는 에티오피아 오모강을 통해 불어난 물이 호수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투르카나 호수 주변은 지난 4차례 연속 우기에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최악의 가뭄 위기를 겪는 건조 및 반건조지대(ASAL)에 속한다.
케냐 북부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대륙 동북부 아프리카의 뿔 지역이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투르카나 호수 지역은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옥빛 바다'(jade sea)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멀리서 바라보면 물 색깔이 아름다운 비췻빛인 광대한 호수다.
떨어져서 호수를 보면 고요한 날씨에 물 표면에 올라온 조류(藻類) 때문에 전체가 청록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호숫가는 흙탕물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호수 표면적은 6천405㎢이고 최대 길이 290㎞, 최대 너비 32㎞에 달한다.
이곳은 또 '인류의 요람'으로 불린다. 약 180만 년 전 직립보행 초기 인류인 호모 에렉투스가 사바나의 나무 위 거주 생활에서 내려와 당당히 초원에 서서 두발로 활보한 곳이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시아와 유럽으로 뻗어나갔으며 그 유골인 '투르카나 보이'가 바로 투르카나 호수 서쪽에서 발견됐다.


◇ 고통받는 뜨거운 가뭄의 현장, 물 나르는 아이들…"염소젖도 말라버렸다"
가뭄으로 고통받는 현장인 케리오센터의 로렝기피 마을을 먼저 찾아갔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약 1시간 40분 정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가 로드와 공항에 내렸다. 이후 사륜구동 픽업트럭을 타고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로 다시 한 시간 반 넘게 들어갔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추장과 10여명의 마을 남녀 대표들이 투르카나 어로 "에조카"(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맞이했다.

레오날드 갈레 추장은 옆에 있던 마을 대표들을 가리키며 "지난 3, 4년간 전례 없는 가뭄으로 이 사람은 염소 60마리, 저 사람은 27마리를 잃었다"며 "가축이 죽으면 우리도 죽는다"고 토로했다.
한 할아버지는 평생 이런 가뭄은 처음 겪는다면서 이전에는 가뭄이 이처럼 집요하게 길지 않았고 가축까지 많이 주려 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페로니카 애키텔라(52·여)는 "우리는 이전에 우유를 마시고 농사도 함께 지으면서 매우 건강했지만, 지금은 몸무게가 모두 줄었다"고 말했다. 염소, 양, 낙타 등 가축 1천 마리가 가뭄으로 야위어 몰골이 더 흉하게 되기 전 미리 도축되기도 했다.
가뭄 위기에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한 윌리엄 루토 신임 대통령은 마침 23개 카운티에 군용트럭을 이용해 식량 등 구호물자를 배분했다.
하지만 아그네스 앨로트 애텔(여)은 지원 품목을 주변 이웃과 나누다 보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앞서 이 마을로 가는 길에 원형 물통을 눕혀 그 양쪽을 끈에 연결해 끌고 가는 10살짜리 잼스 로토루 등 2명의 아이를 봤다. 이들은 매일 오전 수 ㎞ 거리를 걸어 물을 나른다고 한다.
로토루는 학교 수업에 있어야 할 시간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가를 힘겹게 걷고 있었다.
당국 조사에 따르면 물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거리는 평균 10km에 달하고 최대 30km를 걷는 경우도 있다. 물값도 올라 식수 20L(리터)가 5케냐실링(59원)에서 10실링으로 뛰었다.
기온도 올라가 예년 요즘 이맘때 34도 하던 것이 최고 40도까지 육박한다.
이로 인해 가축의 먹이가 되는 풀과 나뭇잎이 마르고 거센 바람에 비옥한 표층이 휩쓸려 간다. 설령 씨가 떨어지더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이는 다시 가축의 성장발달에 악영향을 미치며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 지역에선 원래 염소 젖(산양유)을 많이 짜 마시지만, 물 부족의 여파로 염소 젖도 말라버린 터라 다른 지역에서 우유를 사들여오고 있다고 했다.
수자원개발 전문 국제구호단체 팀앤팀의 보스코 음웬드와는 "가뭄 대처를 위해 현재 2천여 개의 관정을 팠지만 현재 작동하는 것은 약 5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나머지 절반은 오랜 사용으로 물 수위가 내려가거나 제대로 관리가 안 돼 고장 났다.
가뭄의 빈도도 1940∼50년대는 10년 간격이었으나 1960년대 8년, 1990년대 5년을 거쳐 지금은 2, 3년 주기로 잦아졌다.
목초지가 말라 물과 풀이 있는 곳으로 유목민들이 경계를 넘어 이동하거나 다른 사람의 가축을 훔쳐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투르카나 이스트 지역에선 가축 도난 사건 와중에 범인을 쫓던 경찰 8명을 포함해 11명이 매복 공격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현지매체가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호수는 범람해도 물고기 안 잡혀…소금물이라 농사 이용 못 해
이에 반해 다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간 투르카나 호수에선 불어난 물에 어부들이 조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자른 야자나무 줄기 네다섯 개로 만든 똇목으로는 물고기가 있는 깊은 곳까지 나갈 수 없다고 한다.

호숫가 엘리예 스프링스의 청년들은 물 수위가 높아지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은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들은 깊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모터보트 한 척이라도 외부에서 지원해주기를 원했다.
어획량이 적다 보니 생선 요리값도 3년 전 500케냐실링(약 5천900원)에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호숫물이 이전보다 육지 쪽으로 약 500∼700m 밀고 들어와 콘퍼런스 건물 등이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투르카나 호수는 사해처럼 '출구'가 없는 소금 호수이다. 2020년까지 10년간 10% 이상 호수 면적이 증가하면서 육지 800㎢가 침수됐다.
호숫물은 농업용수로 쓰기 힘들지만 깊은 호수 가운데는 염도가 덜하다고 한다. 아직 북쪽 오모 강 등을 통해 담수가 유입되기 때문이다.
로트웰 부국장은 "기후변화는 피부가 희든 검든 인류 공통의 문제"라면서 앞으로 수십 년간 국제사회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르카나 호수는 오랜 옛날 북쪽 나일강과 연결됐다가 분리돼 아직도 호수에 나일악어가 살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홍수로 호수가 범람해 수재민 2만4천여 명이 발생했을 때 악어가 일부 집 앞까지 접근해 주민들이 공포에 떤 것으로 알려졌다.

투르카나 카운티의 주요 소도시인 로드와에서 나고 자란 타마리 로동와(22·여)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 단적으로 "물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기후변화 과제 책임자인 다니엘 푸아쿠유 박사는 기후 행태의 변화는 역사적으로 지구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최근 기후변화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라고 말했다.
푸아쿠유 박사는 "지역에서의 우리의 작은 행동이 하나하나 모여 큰 글로벌 현상으로 나타난다"며 "기후 위기 현상으로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아프리카 지역의 대처를 위해 인프라 투자와 현지 젊은 층의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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