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베 국장일 갈라진 일본…시민 헌화 한편에선 국장 반대 집회
한덕수 총리·해리스 美 부통령 등 국내외서 4천300여 명 참석
연합뉴스, 한국언론 펜 기자로 유일하게 국장 현장 취재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지난 7월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국장(國葬)이 27일 4천300여 명의 국내외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치러졌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거센 반대 여론에도 강행하면서 국장은 일본 국민을 단결시키기보다는 분열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국장 행사장 옆에 마련된 시민 헌화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헌화하는 시민의 줄이 길게 이어졌지만, 동시에 한편에서는 국장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 기시다 "아베, 최장 집권 기간보다 업적으로 기억될 것"
국장 행사장에 입장하니 가장 먼저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아베 전 총리의 대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영정 사진 밑에는 후지산 모양을 본떠 꽃으로 장식된 제단이 설치됐으며 일장기와 함께 아베 전 총리가 받은 훈장이 걸려 있었다.
오후 2시부터 국장이 시작했지만, 일본무도관 안에는 오전 일찍부터 이미 경찰과 경호 요원, 행사 관계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아베 전 총리 '경호 실패'를 이번 국장에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 경찰은 2만 명의 경찰관을 동원하고 시내 교통을 통제하는 등 경계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일본무도관 주변 도로에도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교통을 통제했다.
경비가 강화되면서 기자들은 국장 시작 5시간 전인 오전 9시 행사장에서 떨어진 국회 앞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은 뒤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함께 이동했다.
국장에는 일본 언론뿐 아니라 AP, AFP, 로이터, BBC 등 외국 언론 기자 등 수백 명이 취재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연합뉴스가 펜 기자로는 유일하게 현장을 지켜봤다.
기자들에 이어 국회의원들도 버스로 이동해 정오부터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외빈들도 차례로 입장했다.
국장에는 장의위원장을 맡은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총리, 일본 정부 각료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참석했다. 왕실에서는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으로 일왕 계승 1순위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왕세제 부부가 참석했다.
외국 조문단으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완강(萬鋼)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 정상은 모두 불참했다.
아베 전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가 아베 전 총리의 유골함을 들고 기시다 총리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한 뒤 국장은 시작됐다.
기시다 총리는 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가 일본 헌정사상 가장 오래 집권했지만, 역사는 그 길이보다 달성한 업적으로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에 걸쳐 총 8년 9개월 동안 재임한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이다.
조사가 끝난 뒤 헌화는 왕실을 시작으로 기시다 총리 등 일본 참석자에 이어 외국 조문단 순으로 진행됐다.
자위대 의장대의 장중한 관악 연주가 장내에 흐르는 가운데 조문객들은 국화를 헌화대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인 뒤 아키에 여사 등 유족을 찾아가 인사했다.
한국 정부 조문 사절단으로 국장에 참석한 한 총리와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국회 부의장), 윤덕민 주일 대사, 유흥수 한일친선협회중앙회 회장(전 주일 대사)도 헌화했다.
◇ "감사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 vs "국장 중단하라"
아베 국장으로 인한 국론 분열은 국장 당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일본무도관에서 300m가량 떨어진 구단자카(九段坂) 공원에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헌화대가 설치돼 오전부터 많은 시민이 찾았다.
헌화는 애초 오전 10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이른 시간부터 많은 시민이 찾으면서 오전 9시 반으로 앞당겨 시작됐다고 현지 방송 NHK는 전했다.
오전부터 26∼27도나 되는 늦더위 속에서도 시민들은 수백m 넘게 긴 줄을 서서 조용히 자신의 헌화 차례를 기다렸다.
국장일이 휴일로 지정되지 않고 평일이라 노인과 중년 여성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국화나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50대 시민은 헌화 뒤 "그동안 일본을 이끌어 온 분이라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했다"며 "외교로 일본의 국익과 위상을 높인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무도관 주변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시민단체들의 국장 반대 시위도 벌어졌다.
시민단체는 국장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할 뿐 아니라 아베 전 총리 업적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상황을 고려할 때 총 16억6천만엔(약 165억원)의 세금이 드는 국장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0대 시위 참석자는 "여론조사에서 국장 반대가 반을 넘고 국민의 분단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60대 여성은 "법적 근거가 애매한 국장을 강행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세금을 투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장을 취재한 한 외신 기자는 "아베 전 총리 및 자민당과 통일교 간 관계 등으로 국장에 대한 여론이 너무 나빠졌다"며 "이번 국장으로 일본 국론이 더 분열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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