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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집 문 열면 바닷물이 출렁"…가라앉는 인도네시아 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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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집 문 열면 바닷물이 출렁"…가라앉는 인도네시아 어촌
"어릴 땐 1㎞ 밖에 있던 해안선이 현관 앞까지 와…만조때면 1층은 항상 잠겨"
해수면 상승에 지반 침하 겹치며 1년에 10m씩 해안선이 육지로 다가와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프칼롱안[인도네시아]=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지금부터는 보트로 이동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와주 프칼롱안군 어촌 스모넷에 도착하자 길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차로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보트로 갈아타 물 위를 달리며 지도 앱을 켜보니 지도상에는 육지 위를 이동하는 것으로 표시됐다.
보트로 5분 정도를 달리니 작은 모래섬이 나타났고 그 위에는 쓰러질 것 같은 벽돌집 한 채가 있었다. 스모넷 마을의 유일한 거주민 수로소(57) 씨의 집이었다.

23일(현지시간) 찾은 수로소 씨의 집은 모래섬 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 바닷가 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보니 파도가 치며 바닷물이 발끝에 튀었다. 집 문에서 바다까지는 1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기자가 찾았을 때는 해안선이 집 밖에 있었지만, 만조때면 어김없이 바닷물이 집 안까지 들어와 수로소 씨 가족은 1층을 버려둔 채 집 다락과 야외에 만들어 놓은 원두막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집은 계속해서 바닷물이 집을 들락거리면서 조금씩 부서지고 있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이미 옆집은 지붕이 날아갔고 벽은 무너져 낚시꾼들의 낚시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는 "이웃들은 집에 물이 들어오자 다른 집을 구해서 나갔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서 아직 살고 있다"라며 "집만 구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수로소 씨는 스모넷 마을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70가구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로소 씨와 그의 아내, 두 자녀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는 "어릴 때는 집에서 바다까지 1㎞ 넘게 떨어져 있었고 바다와 집 사이에 다른 집들도 많았다"라며 "그전에도 홍수가 나면 한 번씩 집으로 물이 들어왔지만, 어느 해부턴가 홍수 후 물이 빠지지 않더니 집터가 섬으로 변했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해안선 변화를 연구해 온 한국·인도네시아 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MTCRC)에 따르면 스모넷 마을의 서쪽 지역은 연평균 10m, 가장 심각한 해에는 15m씩 해안선이 다가오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의 변화는 이전 10년과 비교해 해안선 후퇴(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박한산 MTCRC 센터장은 "해안 침식은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에 따른 지반 침하, 해안 공사의 영향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라며 "무엇이 우선인지는 정확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지만 결국은 인간이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수로소 씨 집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스모넷 마을의 다른 집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엔 10여 채의 집이 있었지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안 바닥은 타일이 깨져 있었고, 바다에서 밀려온 검은 흙들로 가득했다.
스모넷 마을 주민이었던 리스완디(36)씨도 2000년대 초만 해도 집에서 해안선까지는 500m 넘게 떨어져 있었다며 "이전에는 남자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여자들은 재스민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해부턴가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농사가 안돼도 집을 지키던 그는 2019년부터는 매일 아침 만조때마다 집 안으로 물이 들어와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다른 마을로 이사해야 했다.
그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인데 물만 안 들어오면 다시 돌아와 살고 싶다"라며 "부모를 잃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살 수 없는 상태지만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로부터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스모넷 마을 대표인 수가유노(54)씨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생필품을 모아 도와주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지원은 없다"라며 "스모넷 주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서를 제출했지만, 정부에서 몇 차례 조사하러 다녀간 것 외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스모넷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의 섬 중에서는 해수면 상승의 영향으로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는 곳들도 나오고 있다. 또 해안가 지역은 스모넷 마을처럼 반복해서 홍수 피해를 보고 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의 분석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2050년까지 인도네시아 해안에 사는 2천300만 명이 해양 홍수의 위협에 직면할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교(ITB) 해양학과 이본 밀리크리스티 라자와네 교수도 "2000년과 비교해 2040년에는 해수면이 50㎝ 상승하고, 해수면 온도는 최대 2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이는 산호 등 어족자원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인구의 약 50∼60%가 해안 지역에 살고 있어 주민들의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해수면 상승에 더해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과 많은 사람이 살면서 짓는 대규모 건물들에 의해 지반 침하가 빠르게 진행돼 매년 대규모 홍수가 반복되고 있다.
자카르타 북부 해안지역은 연평균 7.5∼13㎝씩 지반이 내려앉고 있어 도시 면적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아진 상황이다. 2007년부터는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 들어오는 일이 만조때마다 반복해서 벌어진다.
인도네시아 과학연구원은 해수면 상승과 지반침하 문제가 겹치면서 2050년에는 자카르타의 3분의 1이 수몰되고 2100년에는 대부분의 해안 도시가 물에 잠길 것이란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400억 달러(약 57조 원)를 들여 자카르타 만에 있는 기존 해안 댐 30㎞를 보강하고, 인공섬 17개와 추가 방조제를 건설하는 '그레이트 가루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또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칼리만탄섬에 행정 수도를 새로 짓는 수도 이전 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laecor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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