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켈로 잘 나가던 인도네시아, 인플레 감축법에 발목 잡힐까
인니 광산-중국 자본 조합 많아…중국 기업 우려법인 지정 시 IRA 혜택 못 받아
LG 컨소시엄에도 중국 업체 참여…"구체적인 시행령 확정 때까지 지켜보기로"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통과되고 내년 시행을 앞두면서 니켈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 아니어서 세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데다 인도네시아 니켈 가공제품이 대부분 인도네시아 원광-중국 제련회사 조합으로 생산되고 있어서다.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배터리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LG 등 국내 기업들도 구체적인 IRA 시행령이 나올 때까진 일단 투자를 미룬 상태다.
◇ 미국과 FTA 체결 안 한 인도네시아, 예외 적용받을까
16일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미국의 IRA는 미국 내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최대 7천500달러(약 1천50만원)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지원하는 법이다.
해당 법률은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이 내년부터는 40% 이상, 이어 2027년부터는 80% 이상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수출·가공됐거나 북미지역에서 재활용됐을 경우에만 절반인 3천750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나머지 절반은 배터리 부품을 내년부터 50% 이상, 2028년부터는 100% 북미에서 제조·조립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 조건에서 핵심 광물이 문제가 된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니켈 광산을 바탕으로 니켈 광물을 정·제련해 수출하고 있지만, 미국과는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보조금 혜택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니켈 조달에 공을 들이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배터리 광물 원산지 조건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국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미국 정부와 협상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인도네시아가 참여한 IPEF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은 다자 FTA는 아니지만, 글로벌 무역이나 공급망 재편 등을 목표로 하고 있어 충분히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산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 FTA보다 중국 노린 '우려 법인' 조항이 더 큰 걸림돌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가 IPEF를 통해 FTA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더 큰 문제는 IRA에서 규정한 '해외 우려 법인'(foreign entity of concern) 조항이라고 말한다.
IRA 법에 따르면 배터리 지원 조건들을 충족하더라도 2024년부터 해외 우려 법인에서 생산·조립된 배터리 부품을 채용한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 아직 정확히 해외 우려 법인을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법에서 규정한 사례를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정부가 소유하거나 지배·통제하는 기업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니켈 중간제품이 대부분 인도네시아 광산, 중국 제련회사 조합으로 구성된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광산에서 채굴한 원광을 그대로 수출하지 못하게 규제하자 세계 최대 니켈 생산 회사인 칭산 그룹과 장쑤들롱니켈공업 등 중국 기업들은 약 300억 달러(약 41조9천억원)를 투자해 인도네시아 모로왈리와 웨다베이 등에 대규모 제련시설을 구축했다.
이 외에도 현재 계획 중이거나 신규 건설 중인 니켈 광산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중국 자본에 의해 진행 중이다.
이렇게 중국 제련 회사를 거쳐 나온 중간제품이 배터리에 사용되면 IRA에서 규제하는 해외 우려 법인의 생산 제품에 해당돼 세액 공제 혜택을 받지 못 할 수 있다.
◇ 우려 법인 조항, LG 니켈 프로젝트 발목 잡나
우려 법인 조항은 한국 기업의 발목도 잡을 수 있다. 특히 LG가 추진 중인 대규모 니켈 프로젝트가 문제다.
LG는 인도네시아에서 전기차 밸류체인(가치사슬) 구축을 위해 11조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에서 원광을 채굴해 제련과 정련을 거쳐 전구체-양극재-배터리셀 생산까지 이어지는 완결형 벨류체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가 LG 단독 프로젝트가 아닌 중국 기업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LG는 LG 에너지솔루션과 LG화학을 주축으로 LX인터네셔널, 포스코 등 국내 기업은 물론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국영기업 안탐, 중국 제련회사 화유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화유는 이 프로젝트에서 제련과 정련을 주도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화유가 우려 법인으로 지정되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되는 제품들은 IRA 혜택을 받지 못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미국 이외의 시장을 노릴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대규모 시장인 유럽에서도 IRA와 유사한 개념의 원자재법(RMA) 도입이 추진 중이다. 유럽 역시 높은 중국 의존도를 견제하기 위한 법이어서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국 기업을 배제하고 중국 이외의 정련 회사를 찾아 컨소시엄을 다시 구성할 수도 있지만,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새로 합류하는 기업과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LG는 지난 4월 안탐 등과 전기차 배터리 가치사슬 구축 투자와 관련해 '논바인딩 투자협약'(Framework Agreement)을 체결했지만 아직도 정식 계약은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엔솔 관계자는 "컨소시엄을 다시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IRA 관련 구체적인 시행령이 연말에나 나온다고 하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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