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 ③인플레에 기름…커지는 한은 빅스텝 압박
금융위기 이후 최고 물가·환율 겹쳐…'베이비스텝으로 역부족' 목소리
환율 뛸수록 수입물가↑…한미 금리 재역전에 원화 약세 심해질 듯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원/달러 환율이 겹치면서, 한국은행의 두 번째 빅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은은 앞서 여러 차례 "물가·성장 등이 전망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0.25%포인트(p)씩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미국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 긴축 등에 최근 달러 가치가 급등하고 반대로 원화 가치는 빠르게 추락하는 상황에서, 계속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만을 고집하며 한·미 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방치하기 어려운 처지다.
◇ 환율 상승에 수입 물가 뛰면 인플레 안정도 물거품
원/달러 환율은 22일 1,4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1,400원대에 이른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31일(고가 기준 1,422.0원) 이후 13년 5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아무리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이 잇단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업은 미국 달러의 이례적 강세 탓에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원화 절하는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반영된 부정적 신호다. 아울러 대체로 주식·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의 빌미가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은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치솟는 환율이 어렵게 정점을 통과 중인 인플레이션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이 환율 상승 국면을 왜 우려하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환율 수준 자체보다는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 중간재를 수입하는 기업들의 고충 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연준, 4연속 자이언트 스텝 유력…원화약세 압력 더 커져
더구나 예상대로 미국의 빠른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당분간 이어지면 달러 강세, 원화 약세 현상은 더 심해질 수 있다.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동기대비 8.3%)이 시장의 전망치를 웃돌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결국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에상대로 3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약 한 달 만에 다시 역전됐다.
지난 7월 연준이 두 번째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뒤 미국의 기준금리(2.25∼2.50%)는 약 2년 반 만에 한국(2.25%)을 앞질렀다가 8월 25일 한국은행의 0.25%포인트 인상으로 같아졌지만, 이제 격차가 0.75%포인트까지 또 벌어졌다.
만약 다음 달 12일 한은 금통위가 베이비스텝만 밟고, 11월 초 연준이 다시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면 두 나라의 금리 차이는 1.25%포인트로 커진다.
이어 11월 말 금통위가 또 0.25%포인트만 올리고, 연준이 12월 최소 빅 스텝만 결정해도 격차가 1.50%포인트에 이른다.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1.50%포인트)에 다가갈수록, 그만큼 원화 절하(원/달러 환율 상승), 자금 유출 압박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 한은, 10·11월 기준금리 연속 인상 유력
이런 환율·인플레이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 금통위는 올해 남은 10월, 11월 두 차례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11월까지 사상 처음 6연속 기준금리 인상 기록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금통위 내부에서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린 통화정책방향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물가상승률이 올해 하반기 정점을 보이더라도, 둔화 속도가 완만하고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현재의 전망경로가 유지된다면 점진적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적절하다"며 "내년에도 통화정책의 긴축 정도를 높여가되,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는 국내외 경제 흐름의 변화를 봐가며 유연하게 결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환율 치솟을수록 커지는 두번째 '빅 스텝' 가능성
시장과 경제주체들도 당분간 기준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지만, 문제는 인상 폭과 속도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25일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현 경제 상황이 지난 7월 예상했던 국내 물가, 성장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0.25%포인트의 점진적 인상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같은 달 30일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이 잭슨홀 미팅에서 매파(통화긴축 지지)적 성향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한은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밝힌 향후 통화정책 운용 방향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한은과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만 보자면 다음 달에도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0.25%포인트만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도 진정되지 않고 물가 상승을 부추기거나, 연준의 잇따른 자이언트 스텝으로 원화 절하, 물가 상승, 자금유출 압력이 커질 경우 한은도 7월에 이어 다시 빅 스텝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빅스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충격이 오면 원칙적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꿔말하면 예상 밖의 충격이 커지면 빅스텝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같은 달 29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미리 약속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해야 한다"고 빅스텝의 여지를 남겼다.
shk99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