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물가 쇼크] 고환율에 국내 기업 '비상'…수익성 악화 우려
여행심리 위축시 국제선 운항회복도 제동…항공사, 유류비 부담↑
외화부채 급증…수출 비중 높은 자동차·철강업계도 긴장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원/달러 환율이 13년 5개월여만에 처음으로 1,390원을 돌파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14일 오전 9시 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20.8원 급등한 달러당 1,394.4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3% 오르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일부 수출 기업들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지만, 원자재를 사들여 제품을 제조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 여행심리 위축되면 수요 감소…국제선 회복 제동
각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에 힘입어 국제선 운항을 늘리고 있는 항공사들은 고환율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류비, 항공기 리스료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용을 달러로 지급하는 항공사들은 환율이 높으면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환율로 직접적인 비용 지출이 늘어날 뿐 아니라 재무 구조도 취약해진다.
대한항공[003490]의 경우 환율 10원 변동 시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1천300원이었던 환율이 1천400원으로 오르면 장부상 3천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아시아나항공[020560]도 환율이 10원 오르면 284억원의 외화환산 손실이 발생한다.
이미 고환율 여파로 2분기 항공사의 외화환산손익은 손실로 전환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외화환산손익은 각각 작년 2분기 111억원, 53억원에서 올해는 -2천51억원, -2천747억원으로 악화됐다.
티웨이항공[091810]과 제주항공[089590] 역시 2분기에 적자 규모를 작년 동기 대비 줄였지만, 당기순손실 규모는 오히려 커졌다.
순외화부채만 약 35억달러(약 4조6천813억원)에 달하는 대한항공의 경우 부채 상환 부담도 커지게 됐다.
더 큰 문제는 고환율이 해외여행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높은 환율로 인해 해외여행 수요가 줄어들면 항공사들의 국제선 운항 확대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환율변동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원화 고정금리 차입 확대를 추진하고, 원화와 엔화 등으로의 차입 통화를 다변화해 달러화 차입금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
◇ 달러 빚 많은 배터리 업계…해외 투자도 부담
최근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달러 빚이 많은 국내 배터리·석유화학 업계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영업이익 측면에서 매출 상승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외화 부채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영업 외 손실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와 석유화학 업계는 글로벌 수요 증가와 친환경 미래 사업 전환을 위해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외화부채도 급증한 상태다.
각사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연결 기준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달러 표시 외화 부채는 지난해 말 3조4천119억원에서 올해 6월 말 4조2천493억원으로 24.5% 급증했다. 또 환율이 10% 상승할 때 1천638억원의 세전 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배터리 업계의 경우 환율 상승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대규모 신규 투자를 앞두고 있어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를 비롯해 삼성SDI[006400], SK온 등 배터리 3사는 북미를 중심으로 배터리 공장의 신·증설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환율 상승으로 기존에 예상했던 투자액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LG화학[051910]의 경우 연결 기준 올해 6월 말 기준 달러 표시 외화 부채는 7조6천670억원으로 지난해 말(6조4천888억원)보다 15.3% 증가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친환경 미래 사업 강화를 위한 그린본드 발행 등으로 투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외화부채가 늘어났지만, 재무 건전성에 영향이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표시 채권 발행이 많은 정유업계도 환율 상승이 부담스럽다.
정유업체가 외국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유 공정을 거쳐 제품을 내놓기까지는 약 두 달이 걸리는데 이 기간 현금이 묶이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자금을 융통할 목적으로 '유전스'(Usance)라는 채권을 발행한다.
환율이 치솟으면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지고 분기 실적에 반영되는 영업외손실도 늘어난다.
◇ 철강·자동차 수출 많지만…고환율 장기화시 악영향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의 원재료를 수입하고 있는 철강업계도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제품 수출 비중이 40∼50% 수준인 포스코를 비롯해 주요 철강 회사는 수출을 통해 환율 헤지(위험 회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되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위축되면서 환율 인상에 따른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포스코홀딩스[005490], 동국제강[001230]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의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대비 절반 수준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동차 업계 역시 수출이 많기 때문에 고환율로 일부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원자잿값이 함께 오른다는 점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급격한 환율 변동은 신흥국 시장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어 자동차 판매량이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원자재를 해외에서 사들여 와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은 고환율 여파에 경영난마저 우려하고 있다. 원자재 구매 비용은 오르지만,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즉각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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