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우크라 전쟁, 미국·영국 빼곤 다 회의적이었다"
WP, 미국·우방국 등 수십명 심층 인터뷰해 전쟁 전 상황 재구성
"미, 작년 7월부터 푸틴 의심…10월 러 침공 확신"
우크라측 "미, 전쟁 경고하면서도 구체적인 정보 거의 안 줘"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올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느덧 6개월째에 접어들면서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났다는 것은 전 세계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됐다.
하지만 작년 미국이 먼저 러시아의 침공 계획을 확신하게 된 후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우방국에 경고했으나 이를 믿도록 설득하고 단일된 대비 태세를 갖추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준비가 본격화되기 전인 작년 7월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행동이 수상쩍다고 보고 첩보 수집을 강화했고, 그해 10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현지시간) 수십 명의 국내외 당국자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전 미국과 우크라이나, 서방 우방국, 러시아 사이의 긴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했던 감춰진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 "미국, 작년 7월부터 푸틴에 미심쩍은 눈초리"
미국 정부가 푸틴 대통령의 침략 야욕을 직감한 것은 작년 7월 푸틴이 7천 단어짜리 칼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단일성에 대하여'를 발간하면서였다고 정보 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이 글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였고 서방의 책략에 의해 빼앗겼다고 주장했고, 이에 미국 정보당국은 푸틴이 갑자기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동향 파악에 들어갔다.
사실 미국은 푸틴이 칼럼을 쓰기 수 주일 전인 6월 16일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할 때만 해도 푸틴이 이런 큰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걸 생각지 못했다고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료는 털어놨다.
그러나 이후 미국 정보당국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결집하는 인공위성 자료를 확보하면서 심증을 굳혀갔다.
10월 어느 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백악관 긴급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정사실화됐다.
당시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 지도를 펼쳐놓고 러시아군의 침공 계획을 매우 상세하게 프리젠테이션했다고 한다. 러시아군이 개전과 함께 키이우로 진격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축출하려 한다는 등의 적중한 예측도 나왔다.
에이브릴 헤인즈 국가정보국 국장은 "미국은 러시아의 구체적인 침공 계획은 물론 푸틴 대통령이 군자금을 충당하고 예비군을 준비한 동향 등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에서 러시아를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미국 혼자 대응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앞선 이라크 전쟁을 망친 경험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갑작스러운 철수로 망신을 당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 외교정책 때문에 유럽의 우방 사이에 신뢰가 줄어든 상황이었다고 WP는 짚었다.
◇ 믿지 못한 젤렌스키…"그럼 무기를 줬어야지"
작년 11월 초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를 앞두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마주 앉아 러시아의 침공 계획을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첩보 사진을 꺼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방에는 나와 젤렌스키 대통령 외엔 아무도 없었다. 겨우 60㎝ 정도 떨어져 앉은 상태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심각하고 진지한 자세였지만 믿음과 불신이 교차하는 듯했다고 블링컨 장관은 묘사했다. 그때 젤렌스키는 국가가 패닉에 빠지면 경제가 무너질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수개월간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 정부의 정보를 전적으로 믿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WP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당시 미국은 경고를 하면서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침공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백만번은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은 우리에게 전투기를 줄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전쟁 경고를 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는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미국은 올해 2월 러시아가 침공하기 4~5일 전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정보를 거의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쿨레바 장관은 대통령과 블링컨 장관의 글래스고 회동 후 보름도 안돼 미 국무부를 찾아갔지만, 미국 관리는 농담조로 "참호를 깊게 파세요"라고만 하고 자세한 정보는 말해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 우방 설득 약발 안먹힌 미국…영국만 "큰일 났네"
작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열렸을 때 바이든 대통령은 매우 가까운 우방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정상들을 상대로 전쟁 정보를 공유했다.
그 다음 달에는 헤인스 국장이 벨기에 브뤼셀로 날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설명했다.
헤인스 국장은 "당시 많은 회원국이 의문을 제기했고, 푸틴이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정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 측은 러시아군이 8만~9만명의 병력으로 우크라이나처럼 큰 나라를 침공할 것이라는 푸틴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단순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영국과 발트해 국가들만이 미국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한다.
영국 대표가 어느 시점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헤인즈를 가리키며 "그녀의 말이 맞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은 과거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때 허위 정보를 내세운 전력을 굳이 기억해냈다.
일부 회원국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아프간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것도 거론하며 미국의 정보력에 의구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일부 국가들이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을 때 정보 공유를 조금 더 늘리면서도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WP는 영국이 회의에서 미국에 동조한 것은 원래 양국이 매우 깊숙한 정보까지 공유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 점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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