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00일] ④ 3고·저성장 '복합위기' 속 민생안정에 총력
추경집행·채무조정·물가대책 등 취약계층 지원…재정건전성 정책 시동
법인세·소득세 등 감세 추진…규제 완화로 민간 활력 유도
"국민 체감에는 부족"…"정부 역할 축소에 취약계층 소홀 우려"
"구체적 성과에 시간 걸려"…"국민 마음 담은 정책 만드는 데 역점 둬야"
(세종=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와 저성장이라는 '복합위기' 속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오는 17일 100일을 맞는다.
14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고물가에 대응해 유류세 인하 등 각종 민생안정 대책을 쏟아냈다.
중산층 세 부담 경감을 위해 소득세 인하를 추진하기로 했고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과 채무조정 방안을 내놓으며 취약계층 지원에 나섰다.
중장기적으로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민간 부문의 경제 활력을 높이고 긴축 재정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정책에도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새 정부의 정책 목표는 달성에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어서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합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몸집 줄이기'로 취약계층이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유류세 인하 등 물가 잡기에 총력…소득세 인하·종부세 부담 낮추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맞닥뜨린 건 고물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 올라 2008년 8월(5.6%)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달 상승률(6.3%)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의 가파른 오름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물가 잡기에 매진했다.
탄력세율 조정을 통해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인하하는 한편, 화물업계의 유류비 부담 경감을 위해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준을 L당 1천700원으로 낮췄다.
돼지고기·소고기·식용유 등에 대해 할당관세를 확대하고 포장김치 등 단순가공식료품에 매기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밥상 물가 안정도 꾀했다.
최근에는 추석 성수품 공급을 늘리고 할인쿠폰을 대거 지급하는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20대 추석 성수품의 평균 가격을 현재보다 7.1% 낮춰 작년 추석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그간의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15년만에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하는 방안도 내놨다.
6%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세 과표 구간을 1천400만원 이하로, 15% 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을 1천400만∼5천만원 이하로 각각 200만원, 400만원 올리기로 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기본 공제 금액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폐지해 세 부담을 낮추기로 했다.
◇ 역대 최대 추경으로 취약계층 지원…'채무 조정' 도덕적 해이 논란도
정부는 출범 직후 역대 최대인 62조원 규모의 추경을 집행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손실보전금으로 최대 1천만원을 소상공인에게 지급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프리랜서·문화예술인 등에 지원금을 지급했다.
취약계층을 위해 새출발기금 등 125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책도 발표했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원금 감면 등의 채무 조정을 해주고 주택담보 대출자가 장기·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 대출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 특례 프로그램 등이 '빚투'(빚내서 투자)에 실패한 투자자를 도와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논란 등이 일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채무조정은 '빚투', '영끌'족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며 "과거에도 정부가 위기 때마다 정상적인 채무 상환이 어려운 이들의 재기를 지원해왔으며, 이들의 재기를 지원하지 않아 파산자로 몬다면 그건 우리 경제의 엄청난 비용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 법인세 인하·규제 완화로 민간 활력 제고…정부 살림은 줄여
정부는 민간 부문의 활력을 제고해 저성장을 극복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과표 구간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기업이 국내외 자회사로부터 배당받은 금액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여주고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규제 완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팀장으로 하는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규제를 발굴하고 개선을 추진 중이다.
'원인 투아웃(One In, Two Out)'을 도입해 규제 1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경우 그 규제 비용의 2배에 해당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경제형벌 규정에 대해서는 비범죄화나 형량 합리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세 부담을 줄이고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혁파해 기업의 투자 및 고용을 끌어낸다는 전략이다.
추 부총리는 "기업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느 특정 개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어느 국가나 지향하는 중요 경제정책이고 조세 정책 중 하나의 지향점"이라며 "조세 경쟁력이 업그레이드된다면 단계적인 위기 극복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성장과 세수 확충의 선순환을 통해 재정 건전성 달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장 내년 예산부터 긴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수준을 3.0% 이내로 감축하고 강력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방만 경영을 바로잡는다는 목표로 공공기관의 인력·예산·자산·복리후생을 손보는 관리체계 개편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 "정부 역할 축소로 취약계층 소홀 우려"…"구체적 성과에 시간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민간 주도 경제라는 방향성은 제시했으나, 국민들이 체감하기엔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정부에 따르면 여덟 차례 이상 물가 등의 민생대책을 발표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요인의 영향을 받아 물가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민간 경제 활성화를 위해 내건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등은 정부가 의도한 투자 및 고용 증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소득세 과표 구간 조정, 종부세 개편 등의 세제개편안은 '여소야대'의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한국경제학회장인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내세운 민간주도의 역동적인 경제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규제 완화 등은 대기업 위주의 얘기여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연금 개혁·재정 개혁·노동시장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은 드러냈지만,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떻게 할지 구체화하지 못했다"며 "여러 단편적인 정책을 통해서 국민이 인식하기는 어려웠고 종합적으로 하나의 뚜렷한 체계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들, 새로운 산업을 통해서 성장 잠재력을 발굴하고 성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세와 재정긴축이라는 방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통상 세율을 내려 민간이 활성화돼 세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목표로 해서 감세를 추진하게 된다"며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시기이고 금리가 올라가고 있어 기업 투자와 민간의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정부의 재정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데 세수가 줄어들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며 "정부의 역할이 축소돼 취약계층에 가장 먼저 타격이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시한 경제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인하 등에 대한 반대를 예고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우선순위를 정리해 정부의 방향성과 국민들 마음을 담아낸 정책을 만들고 거기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ncounter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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